"재계 반대+정치권 의지 부족"
[뉴스핌=이준영 기자] "현대차 한전부지 논란·대한항공 오너리스크 견제 수단과 소액주주권을 위해 집중투표제 의무화 도입이 필요합니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개정안이 1년 6개월째 표류중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대선 공약이었던 집중투표제 개정안이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의지 저하와 재계 반대로 동력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권 보호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로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이사수와 동일한 수의 의결권을 주고 이를 원하는 쪽으로 몰아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의무화되면 소액주주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하거나 대주주가 내세운 후보중 문제가 있는 사람이 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다.
그러나 현재 기업들은 집중투표제를 정관 상으로 배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2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47개 민간 대기업진단 소속 전체 상장사 238개사 가운데 12개사(5%)만이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또 우리나라 대기업 이사회의 안건 가결률은 99.7%에 달한다고 전했다. 총수 등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로 변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는 지난 1년(2013년 5월1일~2014년 4월30일) 사이 47개 민간 대기업집단 상장사 238개의 이사회 안건 5718건 중 사외이사 반대 등에 의해 원안대로 가결되지 않은 안건은 15건(0.26%)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부결된 안건은 3건(0.05%)에 그쳤다.
이러한 현실에 지난 2013년 7월 법무부는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집중투표제를 대부분의 회사가 정관으로 배제해 실효성이 약하다며 단계적 의무화를 입법 예고했다.
입법 예고안의 주요 내용은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에 대해 소수주주권으로 집중투표를 청구할 경우 정관배제와 관계없이 이를 채택하도록 의무화 한다는 것.
[출처: 18대 대선 새누리당 대선 공약집] |
당시 김 의원은 "주로 대기업 측에서 여러 가지 큰 잘못된 의사결정들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소수주주의 이익이 거의 완전히 무시돼는 과정이 광범위하게 있었기 때문에 기업의 의사결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지, 여부를 감독할 수 있는지 소수주주 입장에서는 권한이 거의 없었다"며 "이런 부분을 보완하자는 취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입법 예고한지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집중투표제 입법 예고안은 법제처 심사에도 요청되지 못했다.
법무무 담당 관계자는 "집중투표제는 현재 입법예고까지만 됐고 진행중인 것은 없다"며 "다음 단계인 법제처 심사를 요청하지 않았다.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어서 의견 수렴중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상장회사협회 등에서 반대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개정안이 시행되려면 최고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의지가 있거나 정치적으로 여야 합의라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증권업계 안팎에서는 소액주주의 권리를 위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도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한전부지 고가 매입 논란과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등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채이배 경젝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경제민주화 정책의 일환으로 입법 예고한 것인데 이후 기업 편의를 봐주다 보니 중단된 상태"라며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위한 개정안 통과가 필요하다. 이는 지배구조 전횡을 막기 위한 제도로 소액주주와 외부주주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현대차의 한전부지 인수 논란처럼 경영진의 독단적 의사 결정 구조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 사람 만이라도 소액주주의 의견을 대표하는 이사가 생기면 그러한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기에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김우찬 고려대학교 교수는 "대선 당시 집중투표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지만 재계 반발에 부딪혔다"며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사외이사들의 독립성을 위해 그리고 주주들의 영향력 행사를 위해 필요하다. 현대차 한전부지 인수 논란처럼 황제경영을 견제하고 주주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다"고 의견을 밝혔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 역시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후 초기 조현아 전 부사장이 부사장 자리를 유지하려 하고 몇몇 사실을 은폐하려한 점 등에 의해 대한항공이 받는 악영향이 더욱 커졌는데, 이는 사외이사 7명중 5명이 대한항공과 관계가 있었던 인사들로 독립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집중투표제를 통해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사외이사가 한 명이라도 생기면 이런 일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기업들은 경영진이 이사 선임까지 독점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겨우 4~5%의 지분으로 전 계열사의 이사를 뽑는 상황"이라며 "이는 사외이사를 거수기로 만든다. 이 때문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해 소액주주를 대변하는 사외이사 선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류 중인 집중투표제 개정안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부가 방향을 경제민주화보다 기업 자율성으로 바꾸면서 집중투표제 의무화 추진 동력이 떨어진 상황"이라며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의 관심과 의지가 있어야 이 제도의 실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계애서는 여전히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하면 소수주주들의 입장을 대표할 이사의 선임 가능성은 커지는 반면 지배주주의 입장을 대표할 이사의 선임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며 "소수주주는 기업의 장기성장보다 단기적 시세차익에 주로 관심이 많으므로 소수주주를 대변하는 이사가 지나치게 기업경영에 관여할 경우 기업의 장기적 성장보다 단기적 주가 상승에 주력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준영 기자 (jlove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