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박지원 기자] 소년에서 소녀로, 그리고 여인으로…. 배우 김유정(18)은 지난 4개월 여간 KBS 2TV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홍라온(홍삼놈)과 함께 성장했다. “시작 전부터 많은 관심에 고민도, 부담감도 컸다”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 아역 꼬리표를 떼고 어엿한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했다.
20%가 훌쩍 넘는 높은 시청률로 막을 내린 ‘구르미 그린 달빛’은 츤데레 왕세자 이영(박보검 분)과 남장 내시 홍라온의 예측불허 궁중위장 로맨스. 동명의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김유정은 극중 역적으로 몰린 홍경래의 여식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소년으로 살아가는 홍삼놈(홍라온)을 맡아 첫 남장연기에 도전했다.
“원작 팬들도 많고, 첫 남장연기라 고민이 많았어요.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힘들었고요. 하지만 현장 분위기가 좋아서 힘든 걸 잊을 만큼 재밌게 촬영한 것 같아요. 끝날 것 같지 않은 작품이었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섭섭하고 아쉬웠어요.”
‘사극요정’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극 연기에는 베테랑인 김유정도 남장여자 내시 ‘홍삼놈’ 캐릭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자임을 숨기고 살아가다 왕세자 ‘이영’을 사랑하면서 변해가는 감정 연기를 섬세하게 그려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처음부터 홍삼놈 캐릭터를 여자가 남자 흉내를 내거나 남자인 척하는 게 아닌, 씩씩하고 밝은 소년으로 잡았어요. 거부감 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도록 노력했죠. 말투랑 목소리 톤도 고민했는데, 제 목소리가 워낙 중저음이라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김유정은 현장에서 막내 아닌 막내로 통했다.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탄탄한 연기력 덕분에 감독은 물론 함께 호흡을 맞춘 박보검, 진영, 곽동연도 그를 의지했다. 앞서 박보검은 “김유정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그의 연기력을 극찬하기도 했다.
“제가 해준 것도 없는데 다들 그렇게 말씀하셨더라고요. 감사하죠.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박)보검 오빠랑 감독님과는 대본 리딩을 하며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그리고 ‘우리 서로를 믿고 의지하자’며 응원했고요. 진영, 곽동연 오빠 역시 연기하면서 서로 부족했던 걸 이야기하면서 맞춰나갔어요. 저 역시 보검, 진영, 동연 오빠한테 많이 배운 걸요.”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사람은 왕세자 이영 역할의 박보검. 김유정은 그와 우정부터 애틋한 사랑, 키스신까지 다양한 신을 촬영하며 가까워졌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지만 무더위에 함께 고생하니 안 친해질 수 없었다.
“보검 오빠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정말 커요. 계속 연습하고 대사 외우고, 어떻게 보면 오그라들 수 있는 대사도 잘 만들어 내는 걸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보검이 오빠를 보면서 ‘역시 노력한 만큼 사랑을 받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구르미 그린 달빛’은 풋풋한 이영과 홍라온의 사랑을 그리며 10대들의 취향뿐 아니라 2030대까지 사로잡았다. 특히 대사, 소품 등 기존 사극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요소들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안겼다. 김유정은 이 모든 게 김성윤 감독 덕분이라고 했다.
“진짜 존경스러워요. 방송을 볼 때마다 ‘어떻게 그 장면을 이렇게 편집하셨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대본을 볼 때 ‘이게 나가면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하는 장면도 방송을 통해서는 멋지게 그려졌고요. 또 제가 연기하면서 힘들 때마다 잡아주셨어요. 정말 대단한 분이예요.”
다섯 살(2003년)때 어린이 광고 모델로 데뷔한 김유정의 나이는 어느 덧 열여덟. 아역 연기자라는 수식어 때문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오히려 “시간이 더디게 갔으면 좋겠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빨리 성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지금도 시간이 가는 게 싫어요. 사실 열여덟이라는 나이도 안 올 줄 알았어요. 스무 살이 되면 그만큼 생각도, 고민도 많아질 거고, 그걸 담을 그릇이 필요할 텐데요. 저는 아직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그냥 지금이 좋아요. 시간이 안 갔으면 좋겠어요.”
이번 드라마를 통해 아역 이미지를 벗고 성인 연기자로 자연스럽게 첫 발을 뗀 김유정. 화제 속에 드라마를 마친데다 연기력도 인정받은 상황으로, 연말에 상도 기대해볼 만 하다.
“상을 받는다는 건 정말 감사하고 좋은 일이죠. 제가 노력한 걸 인정해주시는 거니까요. 하지만 아직은 부담스럽고 무서운 것 같아요. 그냥 연말 시상식에 참석해 함께 배우들끼리 ‘그동안 고생했다’며 얘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생각만해도 행복하네요.”
[뉴스핌 Newspim] 박지원 기자 (pjw@newspim.com)·사진=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