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투입 없다던 정부, 자금 지원 긴급 선회
대통령 공백기 졸속 처리 시 책임 소재 불분명 우려
[세종=뉴스핌 정경환 기자] 정부가 대우조선해양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더 이상 혈세 투입은 없다고 장담했던 정부가 갑작스레 입장을 바꾸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17일 정부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 신규 자금 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손실분담을 전제로 수조원대 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이 유력한 가운데 조만간 대우조선해양 실사보고서가 나오면, 이를 근거로 정부는 대우조선해양 처리를 놓고 채권단과 협상에 들어갈 방침이다.
정부의 이 같은 속도전에 시장 일각에선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4조2000억원에 이르는 자금 지원을 이미 했고,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물론 정부 당국에서도 대규모 지원 자금을 바탕으로 시간이 지나 업황이 나아지면서 회사가 살아날 것이라 장밋빛 기대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8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우조선해양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면서도 더 이상 혈세 투입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올해 1월 3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7년 범금융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진=뉴스핌 DB> |
그런데 불과 한 달여 뒤 상황은 급반전됐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중심으로 금융당국이 대우조선해양 문제를 다음 정부에 넘기지 않겠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당장 오는 4월부터 채무 만기에 쫓기게 된 대우조선해양의 급박한 사정이다. 다음 달 4400억원을 시작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8년 4월까지 1년여간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2015년 2조9372억원 적자에 이어 지난해 1조6089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 사정상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이에 정부는 자금 지원 가능성을 거론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혈세 투입 논란이 일게 됐다. 무엇보다 한 달도 채 안돼 입장을 180도 바꿔버린 정부의 속내가 무엇인지 걱정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부처 한 관계자는 "대선 주자들도 대우조선 문제는 많이 부담스럽지 않겠나"며 "누가 됐든, 골치아픈 일을 자기 일로 가져가고 싶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사령탑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관계부처와 충분히 사전 협의가 된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와 관련, 기재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산업은행이 금융위 소관이라 금융위원장이 주도적으로 나서는 게 아니겠나"면서 "당장 다음 달부터 채무 상환 만기가 돌아오는 상황이라 그런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있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어떻게 보면 구조조정 주무부처 수장으로서 임종룡 위원장이 나름 소신있게 책임을 다 하려는 것으로 봐줄 수도 있지 않겠나"고 덧붙였다.
그렇다해도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없는 상태에서 이처럼 나랏돈이 대규모로 들어가는 결정을 마치 쫓기듯이 하는 것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시장 한 관계자는 "나중에라도 잘못된다면, 국민 혈세 투입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거 아니냐"며 "책임질 사람이 없다"고 언급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