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대출시 담보요구 일상화.."신용대출,그림의 떡"
재무구조 나빠지면 상환독촉..구조조정서도 역차별
[뉴스핌=한태희 기자] 제약 원료를 만드는 K중소기업은 빠르면 올해 안에 제3공장을 짓는다. 문제는 자금. 새 공장을 신축하고 장비를 장만하려면 넉넉히 70억원을 쥐고 있어야 한다. K기업의 이 모 대표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생각이지만 지난 2009년의 악몽이 떠올라 머리가 아프다.
당시 K사는 약 30억원을 투입해 제2공장을 지으면서 공장 부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문제는 대출 이후. 주거래 은행이 아닌 다른 은행에서 대출금을 갚으라고 독촉한 것. 공장 신축으로 부채가 늘고 재무구조가 나빠지자 바로 자금 상환 압박에 시달렸다. 이 대표는 "대출 상환 압박 때문에 2년 동안 고생을 했다"며 "이번에는 대출금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2공장을 매각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부와 금융권이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막대한 규모의 추가 자금지원을 저울질하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색한 금융 지원책으로 중소기업들이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21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은행 대출 조건별 비중은 부동산 담보가 44.6%로 압도적으로 높다. 연대보증과 예적금 담보도 각각 5.3%, 5.9%로, 중소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신용 외 담보나 보증이 필수적이다. 순수신용(25.1%)만으로 대출을 받는 중소기업은 전체의 4분의1에 불과하다.
시중은행들은 기업 신용등급과 재무구조, 여신 한도 등을 따져서 기업에 돈을 빌려준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은 조건이라도 중소기업에만 유독 담보를 요구한다는 게 중소기업 대표들의 한탄이다.
이시은 KDB산업은행 연구원은 "지난해 차입 비용 상승 및 담보·신용도 위주의 대출 증가로 중소기업 자금 조달 접근성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자료=중소기업중앙회> |
어렵게 대출을 받았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K기업처럼 재무구조가 조금만 나빠져도 중소기업은 바로 자금 회수 압박을 당한다. '대마불사'란 이유로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대기업 살리기'와 딴 판이다. 중소기업은 구조조정 때도 역차별을 받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중소기업은 늘 구조조정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한계기업을 선별하는 금융감독원이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중소기업 20135개를 조사한 '2016년 중소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금감원은 중소기업 100곳당 8.65개 꼴인 176개사를 정리한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미만 등 재무 구조를 토대로 옥석을 가렸다.
반면 대기업에 적용되는 잣대는 다소 느슨하다. 비재무 구조가 반영된다는 얘기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2016년 대기업 신용위험 정기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대기업 602개를 조사한 결과 32개사를 정리한다고 밝혔다. 대기업 100개당 5.6개가 정리 대상에 포함됐다. 문제는 시장에서 정리 대상으로 꼽은 대우조선해양 등이 제외됐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당시 기업 자체 자구계획과 대주주의 지원 의지를 반영해 기업을 선별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자료=한국은행> |
이를 본 한 화장품 중소기업 재무이사는 "중소기업은 재무 상태에 부실 징후만 보여도 자금이 회수된다"고 푸념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 위주의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금융시장 환경 또한 대기업에 유리하고 중소기업에 불리하다"며 "성장잠재력이 있는 중소기업이 비자발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 구조조정은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6월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대기업 한계기업 비중은 9.3%에서 13.7%로 4.4%포인트 상승했다. 이 기간 중소기업 한계기업 비중은 1.5%포인트(13.5%→15%) 올랐다.
15개 중소기업 단체가 참여한 바른시장경제추진단 한 관계자는 "대기업은 퇴출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다는 이유로 부실 대기업의 연명을 위해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경향이 있으나 중소기업은 부실이 가시화돠면 자금난에 직면한 후 대부분 퇴출된다"며 "이른바 대마불사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한태희 기자 (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