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그는 다변가이자 달변가다. 빠듯한 스케줄로 지쳤을 법도 한데 언제나 특유의 중저음으로 신작 이야기를, 자신의 연기론을 술술 풀어 놓는다. 중간중간 젠틀한 유머로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결같음이 매력적인 배우, 장혁(41)이 오랜만에 극장가를 찾았다.
장혁의 신작 ‘보통사람’이 지난 23일 베일을 벗었다. 김봉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보통 삶을 살아가던 강력계 형사 강성진이 나라가 주목하는 연쇄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극중 장혁은 강성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최규남을 연기했다.
“입던 옷을 다 던져버리고 보니까 되게 막막하고 먹먹했어요. 막막했다는 건 당시 어른들은 어떻게 저렇게 할까 싶었고, 먹먹했던 거는 영화에서 아이가 그러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빨리 끝나’라고. 그 말이 울림이 있었죠. 시대적 공감이요? 그건 살아온 세월이 알려준 듯해요. 우리가 조선 시대를 경험하지 않았는데 조선 시대를 알고,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국제시장’(2014)을 보며 공감했듯이요.”
먹먹함, 막막함, 공감 외에도 그는 이 작품을 읽고, 찍고, 또 보면서 숱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사실 장혁이 ‘보통사람’에 출연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손현주 때문이다. 평소 존경하는 선배 손현주가 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그는 냉큼 합류를 결정했다.
“형 안부를 묻다 요즘 뭐하냐고 했더니 ‘보통사람’을 한다는 거예요. 사실 (손)현주 형은 제게 선배로서 롤모델이에요. 선후배들 사이에 중간 다리 역할도 잘해주시고 후배들의 이야기도 참 잘 들어주시죠. 사실 그게 쉽지 않거든요. 그러면서 늘 형과 작품에서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근데 이번에 스케줄까지 맞기에 ‘나도 그 책 볼 수 있어?’ 이렇게 된 거예요. 또 때마침 안타고니스트를 하고 싶었죠.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느낌이잖아요.”
장혁의 구미를 당기게 한 ‘보통사람’의 안타고니스트는 앞서 언급했던 최규남. 서울대 법학과 재학 중 최연소로 사법고시에 합격, 엘리트 검사로 승승장구하던 중 남산으로 넘어와 안기부 실세가 됐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냉혈한이다.
“안타고니스트로서 거대한 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러니 감정을 배제해야 했죠. 다만 사람이니 왜 그렇게 됐는지 몇 개의 신을 통해 표현하려 했어요. 벽이라도 무늬는 그리는 거죠. 톤 같은 경우는 찍어 누르는 듯한 강압적인 시대 특유의 톤을 일부러 피했어요. 반대로 더 친근하게 갔죠. 안기부 실장, 1980년대 등 배경을 하나씩 지우면 사실 굉장히 부드러운 말투예요. 실제 제가 집에서 아이들에게 쓰는 말투고요. ‘엄마랑 뭐 했어요? 그랬어요?’라는 말에 단어만 바꾼 거죠(웃음).”
연기 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심스레 ‘추노’(2010) 대길을 언급했다. 언젠가부터 장혁의 연기에는 대길이 따라다녔다. 특히 전작 ‘보이스’에서는 방송 내내 여전히 대길의 톤을 버리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배우마다 잘 구사하는 게 있을 텐데 굳이 그 특유의 색깔을 뺄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물론 한 가지 색깔밖에 못 한다면 다양성이 없다는 소리를 듣겠죠. 하지만 잘할 수 있고 그게 어울리는데 다양성 때문에 버릴 필요는 없다고 봐요. 물론 그 부분을 늘 견제하면서 가야죠. 저 역시 그러면서 넓혀가는 중이고요. 사실 또 그건 실제 저의 말투고 톤이죠. 설득력만 있다면 쓰는 게 맞는다고 봐요. 말투나 기호 역시 3년에서 5년 주기로 바뀌는 듯하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요.”
자연스럽게 변하고 또 그렇게 나아가다 보니 어느덧 장혁도 40대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 여전히 ‘청춘’의 느낌이 배 있다는 평에 장혁은 “너무 좋다”며 웃어보였다.
“20대 때도 30대 때도 빨리 40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40대인 지금, 내가 왜 그랬나 싶죠(웃음). ‘화산고’(2001) 때 주연 배우 의자에 ‘열정 개척 장혁’이라고 써달라고 했어요. 하하. 그때는 항상 그런 느낌이었죠. 잘은 못하지만 열정으로 부딪혀서 개척해보겠다는. 근데 확실히 경험에서 축적된 거랑 부딪히니 안 되겠는 거예요. 나는 멋있고 많은 말을 했는데 저기서 나온 담백한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거죠. 제 말은 다 사족 같았어요. 그래서 빨리 나이가 들고 싶었죠. 물론 여전히 그런 말을 쓰거나 담백함을 주진 못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비슷한 나이가 되니 확실히 할 수 있는 역할, 연기가 많은 듯해요. 지금 의자엔 뭐라고 있냐고요? 안 새겨요, 이제(웃음).”
이후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던 장혁은 쉽지 않았던 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이 길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리고 여전히, 조금 늦더라도 오래, 또 바르게 이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 참 많은 벽을 만났어요. 매 작품 어딘가엔 벽이 있었죠. 쉽게 풀어왔던 적은 없는 듯해요. 비슷한 부분이 보일지언정 정말 많이 생각했고, 많은 땀을 흘렸죠. 능력이 부족해서 답답하기도 했고 어떤 선배한테는 치기 어린 마음에 연기로 붙기도 했고 깨져보기도 했어요. 어쨌든 그 세월을 내디디며 가다 보면 배우에게는 뭔가가 나오는 듯해요. 물론 속도의 차이는 있겠죠. 사실 저 또한 그렇게 빠른 배우는 아니고요. 다만 쭉 이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아요. 또 변하지 않는 건 열정과 개척?(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오퍼스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