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사랑하는 이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 사랑하는 이가 죽은 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 사랑하는 이를 온전히 떠나보내는 일. 그리하여 사랑하는 이가 없는 세상을 홀로 다시 살아가는 일.
지난겨울 재난 현장 한복판에 섰던 배우 김남길(36)이 이번엔 상처를 품은 남자가 돼 돌아왔다. 신작 ‘어느 날’을 통해서다. 지난 5일 개봉한 이 영화는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의 영혼을 보게 된 남자 강수(김남길)와 뜻밖의 사고로 영혼이 돼 세상을 처음 보게 된 여자 미소(천우희)가 서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알다시피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근데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읽으니까 확 다르게 다가오는 거예요. 그때가 영화 ‘살인자 기억법’ 촬영 중이었죠. 연쇄 살인마 역할이라 제 안의 폭력성이 극대화돼있었어요. 그래서인지 감성적으로 시나리오가 와 닿았고요. 진짜 혼자 펑펑 울었죠(웃음). 원신연 감독님이 ‘눈 왜 그렇게 부었어?’라고 물으실 정도로요. 전 ‘이제 착하게 살래요’라고 했고요(웃음). 아무튼 그런 변화가 있었어요. 확실히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는 걸 느꼈죠. 그래서 관객들에게도 이 정서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물론 그렇게 출연을 결정한 후에도 고민은 있었다. 처음 김남길이 출연을 꺼렸던 바로 그 이유. ‘영혼이 돼 살아 움직이는 여자, 그 영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남자’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았다.
“사실 전 영화는 사실주의에 가까워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과학적으로 이걸 어떻게 증명시킬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고민이 많았죠. 하지만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고, 어떻게 보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삶을 사는 게 우리니까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드리게 됐어요. 그러면서 관객들에게 불편하지 않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죠. 근데 또 저희 영화가 주제 의식은 명확하게 짚어주잖아요. 그 안에 내용은 누구나 그렇게 사는, 우리의 삶을 보여줬기 때문에 좋지 않았나 해요.”
결국 김남길이 꼽은 ‘어느 날’의 백미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우리의 삶과 맞닿아있기 때문”이었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됐다면, 그건 김남길의 열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신의 상처를 숨긴 채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 하지만 뒤에서는 그 아픔에 몇 번이고 무너지는 남자, 김남길은 강수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관객들의 감성을 움직였다.
“배우마다 다를 수 있는데 전 차라리 센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쉬워요. 뭔가 감추고 있으면 어색하죠. 그런데 강수가 그래요(웃음). 내재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행동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움직이죠. 그래서 그냥 자괴감에 빠진 느낌보다는 늘 있는 아픔이니까 혼자 있는 공간에서만 슬픔을 꺼내는 느낌으로 표현했어요. 반면 밖에 나와 있을 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자는 생각으로 임했고요. 더 편하게 하려고 했죠.”
그가 더 자연스럽게 강수를 표현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진짜’ 김남길을 데리고 오는 것. 다행히도(?) 강수의 성격과 꽤 비슷한 부분이 많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제 모습을 투영해서 보여주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말투 역시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진짜 쓰는 거죠. 우리가 아픔이나 비밀은 모두 한두 개씩 다 있잖아요.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니까 그걸 감추는 거죠. 사회는 그런 개인적인 정서를 다 헤아려주지 않으니까. 물론 실제 성향도 강수와 비슷하고요. 제가 다정다감하거나 간지러운 표현을 잘 못해요(웃음). 툴툴거리고 ‘싫어’가 버릇처럼 나오는 츤데레 같은 면이 있죠. 그런 부분을 표현하면 덜 오글거리지 않을까 했어요.”
성격 이야기가 나온 김에 보다 많은 예능에 출연,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건 어떠냐는 질문을 추가로 던졌다. 대중에게 김남길은 진지하거나 차가운 이미지에 가깝지만, 사실 그의 성격은 정반대다. 친근하며 유쾌한 달변가이자 다변가. 짓궂은 농담을 즐기는 장난꾸러기 같은 면도 다분하다.
“아무래도 무거운 작품, 연기를 많이 해서 그런 이미지나 편견이 많은 듯해요. 그래서 간혹 제가 까칠할 거라고 예상하고 다가오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죠. 막상 알게 된 후에 ‘어? 의외네’라는 분도 계시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 또한 저의 여러 가지 모습 중 하나니까요. 그것도 나고 또 지금 이것도 나고(웃음). 상대적인 듯해요. 어떤 사람과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죠. 예능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솔직한 모습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게 잘못 전달돼 출연 작품이나 동료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조심스럽죠. 그리고 이번에 ‘인생술집’ 출연해 보니 정말 예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오퍼스픽쳐스·CGV아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