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7일 결심때 '靑 캐비닛 문건' 증거능력 판단 가능성
특검, 스모킹건 vs 삼성, 정황·간접증거에 불과
법조계, "정황증거 채택돼도 '安 수첩'과 함께 강력한 간접증거 될수도"
[뉴스핌=김범준 기자] '433억원대 뇌물' 공여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재판이 오늘(7일) 오후 53차 공판 결심을 끝으로 마무리 되는 가운데, '스모킹건'(smoking gun, 결정적 증거)에 대해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할지 주목되고 있다.
이 부회장 재판의 쟁점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문제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문제,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문제 등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는지 ▲삼성이 최씨 일가를 지원한 것을 '뇌물'로 볼 수 있는지 ▲이 부회장이 이 과정에 얼마나 개입했는지 등으로 요약된다.
쟁점 정리에 주요하게 작용을 할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은 '안종범 수첩'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 캐비닛문건', 그리고 '정유라 폭탄발언' 등이다. 이들에 대한 증거능력 여부는 현재 재판부의 심판대에 올라 있다.
① '정황증거' 채택된 안종범 수첩...효력 정도는?
안종범(58·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은 3차례에 걸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내용 뿐만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의 각종 발언과 지시사항이 대부분 적혀있어 '박근혜 정부 사초(史草, 사관이 기록한 실록의 초고)'라고도 불렸다.
이미지는 본 뉴스와 관계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
하지만 지난달 5일 36차 공판에서 특검이 제시한 안종범 수첩 10여페이지는 '최순실·정유라·삼성 경영권 승계'라는 단어가 적혀 있지 않았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안 전 수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말이 빠른 편이라 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발언을 그대로 적었다"며 "최순실·정유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고, (언급이) 있었다면 이들의 이름을 적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날 "(안 전 수석) 수첩에 적힌 내용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내용 진술증거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기재 내용의 진정성과 관계없이 수첩의 기재가 존재한다는 자체에 대한 '정황증거'로 채택하겠다"는 것으로 정리했다.
정황증거(情況證據)란 사실을 간접적으로 추측하게 하고 증명하는 증거다. 직접증거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간접증거라고도 한다.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범죄자의 지문 혹은 폐쇄회로(CC)TV 기록 등은 직접증거가, 사실을 추정할 수 있는 제3자의 흔적 혹은 증언은 간접증거가 된다.
그러자 "안종범 수첩이 증거능력을 상실했다", "법정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만큼 증거가 없으면 무죄" 등 박근혜·이재용 무죄론이 고개를 들었다. 한 변호사는 "전해 들은 내용을 받아 적는 과정에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안 전 수석의 수첩이 여전히 유효한 증거물로 보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한 전직 판사는 "뇌물사건의 경우 직접증거가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양한 정황증거들을 종합해 판단한다"면서 "간접증거의 양과 질이 충분하다면 직접증거 못지 않은 증거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봤다.
② '청와대 캐비닛 문건'...직접증거 채택될까
지난달 14일 청와대는 긴급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정부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300여종의 문건이 캐비닛에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일명 '박근혜 정부 청와대 캐비닛 문건'.
여기에는 "삼성 경영권 승계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경제에 더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 "삼성의 당면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 등의 내용도 담긴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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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안 전 수석의 수첩에 이은 두 번째 '스모킹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청와대가 이 문건을 검찰에 전달하자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재수사의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특검은 지난달 21일 문건 16건을 증거로 추가 제출했고, 재판부는 증거로 채택했다. 특검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시 이 부회장, 삼성의 현안을 인식하고 정부가 지원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날 결심 공판 전까지 증거로 제출된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건들에 대한 증거능력을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자 예상 외로 파급력은 약하고 등장만 요란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일었다. 삼성 측은 간접·정황 증거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했다.
안 전 수석의 수첩과 같이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로 채택돼도 뇌물죄 판단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맞섰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증거물로 채택한 이상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간접증거로 인정된다고 해도 중대성이 크면 강력한 효력을 낼 것"이라고 봤다.
③ '비선실세' 최순실·'럭비공' 정유라...이재용과 아는 사이? 모르는 사이?
지난달 12일 증인으로 깜짝 출석한 최씨의 딸 정유라(21)씨는 삼성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한 증언들을 쏟아냈다.
"어머니(최씨)가 '삼성에서 살시도(정씨가 탔던 명마)의 이름을 살바토르로 이름을 바꾸라고 한 것이니 토 달지 말고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공주승마'로 문제가 됐던 내가 삼성이 소유주인 말을 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문제가 될 것이라며 화를 냈다" 등의 발언이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승마에 대한 지원 등을 강요받았을 뿐, 최씨와 정씨의 존재는 애당초 몰랐다고 항변했다.
지난 2~3일에 진행된 피고인 신문에서 이 부회장은 "대한승마협회에 대해선 회사에 다 넘기고 관여한 바 없다", "승마 관련 기사를 20년 이상 안 봤다"고 직접 대답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씨 딸 정유라씨. [뉴스핌DB] |
한편 이 부회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되는 결심에서 박영수 특검으로부터 직접 구형받는다. 지난 1월12일 이 부회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피의자로 첫 소환조사를 받은 지 208일만, 2월17일 구속된 지 172일만, 2월28일 기소된 지 161일만, 3월9일 첫 공판준비기일을 가진 지 152일만, 4월7일 첫 정식 공판이 열린 지 123일만이다.
[뉴스핌 Newspim] 김범준 기자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