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탈리아까지 위기의 연속, 태생적인 결함 해법 없어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유럽중앙은행(ECB)이 1일(현지시각) 출범 20주년을 맞은 가운데 공동 통화 유로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새삼 고개를 들었다.
공교롭게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고국인 이탈리아가 최근까지 유로존 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으면서 우울한 기념일을 맞은 19개 회원국의 중앙은행과 공동 통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다.
유로화 <출처=블룸버그> |
ECB 출범 이후 이듬해인 1999년 도입된 유로화는 최근까지 약 20년간 꼬리를 무는 위기의 순간을 맞았다.
그리스를 필두로 이른바 주변국의 부채 위기부터 최근 이탈리아 사태까지 공동통화존의 영속성을 위협하는 상황은 뜨거운 논란 가운데 등장한 유로화의 근본적인 결함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지적이다.
유로존의 위기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됐다. 디플레이션과 침체 리스크는 공동통화존을 침몰 위기로 내몰았다.
유로존의 국내총생산(GDP)는 1조4000억유로(1조7000억달러)로, 2007년 이후 연2%의 성장을 이뤘을 때의 경제 외형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는 소위 ‘잃어버린 10년’의 늪에 빠졌던 일본이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완만한 경기 회복과 성장을 이룬 것과도 대조를 이룬다는 지적이다.
경제적 난관에 이어 최근 수년 사이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가세하면서 그리스와 프랑스, 이탙리아까지 회원국들의 유로존 탈퇴 소동이 끊이지 않았다.
석학들이 지적하는 문제의 진원지는 다름아닌 유로화의 태생이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공적통화금융기구포럼(OMFIF)의 데이비드 마쉬 회장은 자신의 저서 <유로의 역사(The History of Euro)>에서 정치적 목적을 앞세워 결성된 경제, 금융 공동체가 처음부터 매끄럽게 작동하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미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의 구조적인 결함으로 세 가지를 지적했다. 무엇보다 유로존은 통화 발행을 중앙집권화 했지만 19개 회원국 정부는 각자의 재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즉, 정부나 민간 기업이 부채 위기를 맞았을 때 미국처럼 소위 ‘머니 프린팅’을 통해 구제금융을 시행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금융시장이 이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유로존 주변국들의 부채 위기는 악화 일로로 치달았고, 지난 2012년 ECB가 ‘무엇이든 한다’며 위기 진화에 뛰어 들었다.
ECB가 금리 인하와 자산 매입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벼랑 끝 위기의 공동통화존을 회생시켰지만 근본적인 결함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국가 경제가 위기를 맞을 때 중앙은행은 금리인하를 단행해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게 마련이고, ECB 역시 같은 해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유로존은 인플레이션 2% 상한선이라는 규정과 물가 상승에 반기를 드는 독일 분데스방크의 압박에 의해 적시 적기에 효과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하지 못했고, 디플레이션으로 빠져드는 상황에 가서야 부양책을 단행했다. 이는 공동통화존의 두 번째 결함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의 재정협약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회원국들의 부채가 GDP의 60%를 넘지 않도록 협약으로 인해 정부가 다급한 상황에도 세금 인하와 정부 지출 확대 등 부양책을 시행할 수 없다는 얘기다.
최근 이탈리아와 앞서 프랑스의 포퓰리즘 정당이 ‘안티 유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정치적 결속이 없는 공동 통화의 영속성을 장담하기 어렵고, 유로화의 출범이 처음부터 불완전했다는 석학들의 20년 전 주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CB의 첫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던 경제학자 오트마 이싱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정치적 결속 없는 통화의 생존은 생각하기 어렵다”며 “위기 상황에 대한 해법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