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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세원 기자 = 사우디아라바이아와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UAE) 등 오일 머니를 앞세운 걸프 지역의 국가들이 글로벌 스포츠 산업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탈(脫) 석유화 시대에 대비해 산업 다각화를 꾀하고, 관광산업 활성화를 추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각종 글로벌 스포츠 대회 유치에 나서고 있다.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걸프국들이 이 외에도 인권유린 실태 등을 숨기기 위한 이미지 세탁 수단으로 스포츠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석유 의존도 낮추고, 관광산업 활성화 노린다
사우디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에 나서고 있다. 스포츠 산업 육성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추진하는 사회·경제 계획인 '비전 2030'의 일환이기도 하다.
일례로 스페인축구협회는 2019∼2020시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스페인 슈퍼컵)를 내년 1월 사우디 제다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슈퍼컵은 3년간 사우디에서 치러지며, 계약 금액은 연간 3500만~4000만유로다. 여기에 빈 살만 왕세자의 영국 프리미어리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수설까지 불거지고 있다.
사우디는 축구뿐만 아니라 복싱과 모토레이싱 등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사우디는 포뮬러E 모토레이싱 대회와 이탈리아 축구 슈퍼컵, 유러피언투어 골프 대회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또 사상 처음으로 사이클링 투어 이번트를 유치하며, 내년 2월에는 상금 2000만달러를 내걸고 경마 대회 '사우디컵'을 진행한다. 이는 전 세계 경마대회를 통틀어 가장 높은 상금액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 밖에도 사우디에서는 내달 7일 세계적인 복싱 선수 앤서니 조슈아와 앤디 루이스 주니어의 대결이 펼쳐친다. 헤비급 타이틀매치가 중동 지역에서 열리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사우디 체육부 장관인 압둘아지즈 빈 투르키 알 파이잘 왕자는 FT에 "우리에게 한계란 없다. '비전 2030'의 일환으로 최고의 경기를 유치하고, 관광산업과 스포츠, 문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활용해 사우디를 홍보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왕국을 역내 스포츠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모든 종류의 스포츠 대회를 개최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의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카타르는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만 20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카타르 투자청의 자회사인 카타르스포츠인베스트먼트(QSi)는 2011년 프랑스 명문 축구 구단 파리생제르망(PSG)을 인수했다. PSG는 2년 전 브라질의 슈퍼스타 네이마르를 FC 바르셀로나에서 영입해오는 과정에서 2억2000만유로라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지불했다. 이는 축구 리그 역사상 가장 높은 이적료로 기록됐다.
UAE 아부다비 왕가의 왕자이자 UAE 부총리인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은 2008년 1억5000만파운드에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시티를 인수했다. UAE는 또 400억달러 규모의 야스아일랜드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포뮬러1(F1) 트랙을 건설했다.
영국 맨체스터시티의 홈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인권실태 감추려 스포츠 악용한다는 의혹도
걸프국은 스포츠 산업 육성을 통해 산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은 오락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은 24세 이하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걸프국들이 자국의 열악한 인권 수준을 감추기 위해 스포츠를 활용한 이미지 세탁에 나섰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사우디 인권운동가들은 빈 살만 왕세자 주도 하에 사회적 개혁이 단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등을 비롯해 학계와 사업가, 성직자, 여성운동가에 대한 탄압이 이어지는 등 정권이 점점 더 독재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영국에 거점을 둔 사우디 인권단체 ALQST는 "그들(걸프국들)은 사업가와 정치인,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지원하는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 및 각종 행사를 유치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사이먼 채드윅 영국 샐포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카슈끄지 피살 사태가 발생한 이후 스포츠산업 종사자들 중 일부는 "사우디와의 관계를 멀리했다. 하지만 돈의 유혹은 평판에 대한 우려를 뛰어넘는다"고 지적했다. 채드윅 교수는 그러면서 "사람들이 다시 사우디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세간의 비난에도 사우디는 향후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까지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알 파이잘 왕자는 올림픽과 월드컵 유치 도전을 묻는 FT의 질문에 "못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왕자는 "무슨 일을 해도 사우디에게는 돈방석에 앉아, 모든 곳에 쓰기만 한다는 인식이 따라다닌다"며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것이 우리에게 최선인지,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부연했다.
saewkim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