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창릉·부천대장도 그린벨트…"강남권만 보존 형평성 안 맞아"
문 대통령 언급 '태릉골프장'도 그린벨트…환경단체 "사과 촉구"
그린벨트 해제보다 재건축·재개발…기간 짧고 비용대비 효과적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보존' 방침을 밝혔지만, 정작 태릉골프장과 3기 신도시도 그린벨트 해제로 추진되고 있어 논란이 뜨겁다. 주택부족이 극심한 강남권 그린벨트는 보존하는 반면 경기도 또는 강북의 보존가치 높은 그린벨트에는 집을 짓는다니 '앞뒤가 안 맞는다'는 지적이다.
22일 총리실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주례회동을 갖고 그린벨트는 미래세대를 위해 해제하지 않고 계속 보존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또한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골프장(83만㎡)을 택지로 조성하는 방안에 대해 관계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논의를 이어가도록 했다.
◆ 고양창릉·부천대장도 그린벨트…"강남권만 보존 형평성 안 맞아"
하지만 국토교통부의 3기 신도시 사업이 그린벨트 해제로 이뤄지는 만큼 이번 결정은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고양 창릉지구(전체 813만㎡)는 전체의 97.7%가 그린벨트이며, 부천 대장지구(343만㎡)는 전체의 99.9%가 그린벨트다.
부천 대장지구 조감도 [자료=국토부] |
국토부는 창릉지구 가용면적의 135만㎡를 자족용지로 조성한다. 해당 용지에는 스타트업 기업 지원을 위한 '기업지원허브', 성장단계 기업을 위한 '기업성장지원센터'를 건설 운영할 계획이다. 대장지구 자족 용지에는 약 57만㎡ 규모의 도시첨단산업단지를 지정한다.
반면 이번 문 대통령 발표로 서초구 내곡동, 강남구 세곡동 일대 그린벨트는 보존된다. 이들 지역은 '강남과 분당 사이'에 있어 주거지로 개발할 경우 인기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그간 공공택지 조성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해제 1순위 지역으로 꼽힌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두 지역은 농지 중심으로 구성돼 그린벨트 중 보존가치가 낮은 지역이다. 주변 교통여건도 나쁘지 않아 대단위 기반시설 공사를 하지 않아도 주거신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내곡동, 세곡동보다 보존가치가 높고 강남 접근성이 나쁜 창릉·대장지구 그린벨트를 해제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목표대로 강남권 집값을 잡으려면 강남 인근 지역에 주택공급을 늘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원은 "현재 서울에서 가장 주거수요가 높은 지역은 강남 지역"이라며 "강남권에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3기 신도시에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을 짓는 의미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그린벨트에도 서울과 경기도에 차별이 있는 것이냐는 논란이 빗발치고 있다.
한 청원인은 "창릉지역은 고양시 뿐 아니라 수도권에 얼마 안 남은 허파처럼 소중한 곳"이라며 "집값이 오르는 곳은 강남을 비롯한 서울인데 아파트 공급이 넘치는 지역(경기도) 그린벨트를 파괴하는 것은 정부의 30만가구 공급 달성을 위한 구색 맞추기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린벨트도 서울과 경기도에 차별이 있는 것이냐"며 "나무도 서울에 있어야 안정적이고 쾌적한 삶을 보장 받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 문 대통령 언급 '태릉골프장'도 그린벨트…환경단체 "사과 촉구"
또한 문 대통령이 주택공급에 활용하겠다고 밝힌 '태릉골프장'도 그린벨트로 알려져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은 더 추락하고 있다.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 682번지에 있는 태릉골프장은 서울에 주소를 둔 유일한 골프장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1966년 육사 전용 골프장으로 개장 후 지금까지 군 전용 골프장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보존' 방침을 확정한 가운데 지난 16일 정부와 여당이 주택공급 대책 일환으로 국방부 소유의 태릉골프장 부지 일대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다. 사진은 21일 오전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2020.07.21 pangbin@newspim.com |
태릉골프장이 그린벨트로 지정된 건 1970년대다. 하지만 태릉골프장은 개발제한구역 제도가 생긴 시점(1971년)보다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린벨트임에도 골프장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정부는 지난 2018년 수도권 공급대책 때 태릉골프장 부지를 택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당시 골프장을 소유한 군의 반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택지조성을 언급해 실제 주택공급 부지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하지만 태릉골프장은 보존가치가 높은 그린벨트인데다, 강남권 접근성도 높지 않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태릉골프장 부지 대부분은 환경영향평가 2등급 이상으로 보존 가치가 높다. 환경부 국토환경성평가지도에 따르면 태릉골프장 63만6904㎡ 중 98.11%인 62만4877㎡가 환경영향평가 1·2등급이다.
한 네티즌은 "강남 그린벨트는 비닐하우스만 있는데도 보존해주고, 태릉 그린벨트는 숲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아파트를 짓는다고 한다"며 "공원이 넘치는 강남은 손 안 대고, 강북은 아파트 닭장을 만든다"고 썼다.
환경운동연합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20여개 단체는 지난 21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린벨트 해제 논란 관련 대(對)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이 대안으로 언급한 태릉골프장 부지 역시 개발제한구역"이라며 "3기 신도시인 부천 대장지구, 고양 창릉지구 등의 개발제한구역 해제 역시 강행되고 있어 여전히 (그린벨트를 둘러싼) 갈등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 그린벨트 해제보다 재건축·재개발…기간 짧고 비용대비 효과적
전문가들은 이처럼 논란의 소지가 많은 그린벨트 해제보다는 도심 재개발·재건축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린벨트는 해제해도 실질적 주택공급 효과가 낮기 때문에 도심 재개발·재건축이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2020년 수도권 광역도시계획(변경) 본보고서에 따르면 서민주택 등 국책사업을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한 지역은 용적률을 190~220% 수준으로 잡는다. 서울시 도시계획 조례에서 지정한 제2종 일반주거지역 용적률 200%와 큰 차이가 없다.
또한 개발제한구역의 조정을 위한 도시·군관리계획 변경안 수립지침에 따르면 그린벨트 해제지역에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할 경우 공원용지 비중이 20% 이상이어야 한다. 예컨대 서민주택 개발용지의 총 면적이 80㎢면 이 중 20%인 16㎢는 공원녹지로 만들어야 하는 것. 공원용지가 일정 수준 이상을 차지하니 집 지을 수 있는 땅은 줄어든다.
그린벨트 해제지역을 개발하려면 토지보상금도 투입해야 한다. 토지보상 및 부동산 개발정보플랫폼 지존에 따르면 올 하반기부터 내년 말까지 전국에서 풀릴 토지보상금은 약 50조원으로 추산된다. 여기다 서울 내 그린벨트 개발까지 더해진다면 부동산시장에 풀리는 유동성은 더 늘어난다.
이 경우 서울·경기 등 수도권 부동산시장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토지보상금이 투자처를 찾아 수도권 주택과 토지시장에 유입된다면 그 지역 부동산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 보상금 액수를 놓고 토지주들과 갈등이 벌어져 사업이 지연되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이에 따라 서울 도심의 30년 이상된 노후 아파트를 재개발·재건축하는 게 주택공급에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재개발·재건축은 인허가 후 3~4년 안에 공급이 가능하다. 또한 그린벨트·신도시 개발과 달리 기존 교통·교육·상권 인프라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어 비용도 적게 든다.
서울 주요 재건축 지역으로는 강남구 압구정동 6개 재건축 지구단위계획구역,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이 있다. 이 6곳의 재건축 사업만 완료돼도 총 가구수가 기존 5만6788가구에서 10만5338가구로 약 2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구만수 국토도시계획기술사사무소 대표는 "그린벨트 해제지역은 기본적으로 고밀개발을 할 수 없게 돼 있다"며 "서민을 위한 보금자리 주택단지를 만들 경우 생태친화적(Eco-friendly)으로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용적률, 공원 조성 등 여러 제약이 따른다"고 말했다.
이어 "그린벨트 해제보다는 도심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실질적 공급이 필요하다"며 "또한 양도소득세 중과 완화로 다주택자 보유물량이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