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FI와 소송전 중 자회사에 대규모 유증
FI, 교보생명에만 관심...자회사는 분리매각 관측
[서울=뉴스핌] 김승동 기자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풋옵션(특정 가격에 지분을 되 팔 수 있는 권리) 행사 가격을 놓고 국제소송을 진행 중인 재무적투자자(FI)가 자회사인 교보증권·교보라이프플래닛에 대규모 유상증자를 승인한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금감원도 이 부분에 관심이 커, 종합검사를 앞둔 사전검사에서 들여다볼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신 회장이 자회사를 통해 3세 경영수업을 본격화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FI도 시장 지배력이 높은 교보생명 지분에만 관심 있을 뿐, 교보생명 자회사의 경영권에는 큰 매력이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21일 투자은행(IB)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지난 5월과 6월에 자회사인 라이프플래닛과 교보증권에 각각 1000억원, 2000억원을 유상증자했다. 두 회사는 교보생명 자회사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유증은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진행되며, 이사회에는 신 회장과 국제소송을 진행 중인 FI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코리아(어피니티) 이상훈 대표도 포함돼 있다. 이에 신 회장과 국제소송을 진행 중인 FI가 유증을 승인한 배경에 관심이 모였다.
업계는 신 회장이 FI와의 소송 결과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고 유증을 했다는 분석이다. 패소시 자회사 분리매각을 고려한 것으로 교보증권, 교보라이프플래닛이 교보생명 자회사 중 가장 규모가 크지만 시장 지배력은 높지 않다.
패소 시 신 회장은 FI의 지분을 높은 가격에 사야 한다. 지난 2012년 어피니티 등 FI는 컨소시엄을 꾸리고 교보생명 지분(29.34%, 주당 24만5000원)에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인 신 회장(지분율 33.78%) 개인을 상대로 풋옵션 조항을 걸었다. 풋옵션은 '15년까지 기업공개(IPO)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즉 FI는 기업공개 후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교보생명 지분에 투자한 것이다.
[서울=뉴스핌] 김승동 기자 = 교보생명 주주 현황 2020.09.17 0I087094891@newspim.com |
교보생명은 '18년까지 IPO를 하지 않았다. 약속 기한의 3년이 지나 FI는 풋옵션을 행사, 투자금 회수에 나섰다. FI가 요구한 행사가는 주당 약 41만원. 반면 신 회장 측은 주당 가격이 2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총 매매가격에서 약 1조원의 행사가격 차이가 발생한 것.
풋옵션 행사가에 대한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신 회장과 FI는 '19년 대한상사중재원(ICC)에 중재를 신청했다. 상사중재원은 각종 경제 분쟁을 중재·조정하는 기관이다. 단심제로 진행, 중재 신청 후 1년 정도면 결과가 나온다. 중재 결과는 국제적인 법원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중재 결과가 예상보다 늦어지는 중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대주주 신 회장 개인의 일이라며 나서지 않았던 교보생명이 본격적으로 참전했다. ICC의 결정이 교보생명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FI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신 회장은 FI의 투자금을 돌려주기 위해 상당량의 교보생명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는 예측이다.
[서울=뉴스핌] 김승동 기자 = 교보생명 자회사 현황 2020.09.17 0I087094891@newspim.com |
ICC 결과에 신 회장의 경영권 향방을 가를 수 있다.
교보생명은 시장 지위 2위권으로 만약 매물로 나오면 가치를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는 7조원 이상이라고 예측한다. 대주주가 된 이후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매각하면 투자 이후 약 10년만에 엑시트(투자금 회수)도 가능하며, 적지 않은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다만 교보생명의 예상 매각가가 높아 인수후보자도 제한적이다.
교보생명 자회사는 시장 지배력이 높지 않다. 교보생명 자회사 중 규모가 가장 큰 교보증권은 시장 점유율 약 2%이며, 교보라이프플래닛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에 매물로 나와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교보생명과 자회사를 분리매각에 대비해 신 회장의 유증을 FI가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FI가 교보생명을 가져가고, 그 대가로 신 회장 일가에는 교보생명의 자회사의 지분을 넘기는 구조다. FI 입장에서 자회사는 분리매각해야 교보생명의 투자금 회수에 유리하다.
결국 교보생명의 이번 유증은 자회사 지배력을 높이는 동시에 ICC 판결 후 대주주가 된 FI의 분리매각에 대비한 복안이라는 분석이다.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높을수록 매각 절차가 단순해진다. FI 입장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교보생명에만 집중하면 된다. 자회사 분리매각도 손쉬워 신 회장 일가에게 매각할 수 있다.
보험 시장에 정통한 IB업계 고위 관계자는 "교보생명과 풋옵션으로 소송 중인 FI측 이사회 멤버가 특별한 이유 없이 유증을 승인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유증에 이은 신 회장 일가의 움직임은 3세 경영을 위한 수업을 본격화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이어 "FI의 입장에서 교보생명 매각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규모가 작은 교보증권 등 자회사의 경영권에는 큰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신 회장의 차남인 신중현 씨는 지난달 교보라이프플래닛에 입사했다. 장남인 신중하 씨는 자회사 KCA손해사정에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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