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복용운전 후 뺑소니…1심 벌금형 → 2심 집행유예
"구체적 항소이유 기재 안했다면 양형부당 판단 못한다"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검찰이 "원심 형량이 가볍다"며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구체적인 항소이유를 밝히지 않은 경우 법원이 원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하는 것은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모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 합의부에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앞서 전 씨는 지난해 5월 8일 오후 6시20분 경 성남시 분당구 소재 도로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다른 차를 들이받아 피해자 3명에게 상해를 입히고 달아났다. 그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고 당시 전 씨는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타르타르산염(졸피뎀), 클로나제팜 성분이 함유된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나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도 받았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음주운전 외에도 과로, 질병, 약물의 영향 등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운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1심은 전 씨가 피해자들에게 상해를 입히고도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현장에서 이탈했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다만 사고 당시 전 씨가 해당 약물을 복용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전 씨는 사고 전날 오전 우울증과 불면증 등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은 뒤 해당 약을 처방받고 복용했지만 사고 당일에는 약을 먹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에 "피고인이 약물 복용 후 운전한 것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한 잘못이 있고 원심 형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사실오인·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2심은 "약물 복용 후 운전 부분에 대한 원심 (무죄) 판단은 정당하므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면서도 "원심의 형은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보이고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은 이유 있다"며 전 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검찰이 적법한 양형부당의 항소이유를 제시한 것을 전제로 전 씨에게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한 2심 판단은 옳지 않다고 봤다.
대법은 "검사는 피고인의 유죄 부분에 대해 항소장이나 항소이유서에 '양형부당'이라고만 기재했을 뿐 구체적인 이유를 기재하지 않아 적법한 양형부당의 항소이유를 적시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은 검사의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으로든 직권으로든 유죄 부분의 양형이 부당하지 여부를 심리·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의 무죄 부분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 이상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원심 판단에는 검사의 적법한 항소이유 기재방식, 항소심 심판범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