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표류하던 클린스만호가 출항 1년 만에 좌초됐다. 역대 최악의 사령탑을 만난 한국 축구대표팀에겐 '잃어버린 1년'이다. 위기를 맞은 한국 축구는 스스로의 민낯을 들여다 보고 고쳐나갈 기회이기도 하다.
클린스만 감독. [사진 = KFA] |
우려속 '스타급 지도자' 선임... 영입 과정 아직 베일속
대한축구협회는 2023년 2월 파울루 벤투 감독의 후임으로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까지 지휘봉을 맡겼다. 국내외 축구계에서 의구심과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도자로서 '능력 부족'이란 평가가 끝난 클린스만을 굳이 데려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었다. 심지어 독일언론에서조차 "한국 축구에 행운을 빈다"고까지 했다. 독일 대표팀의 골잡이 출신인 클린스만 감독은 2004~2006년 독일 대표팀 감독을 맡아 자국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에서 3위를 달성하며 지도자로서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독일 대표팀 출신의 필리프 람은 자서전에 클린스만의 바이에른 뮌헨 감독 시절에 대해 "우린 체력 훈련만 했다. 전술적인 지도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클린스만 감독은 미국 대표팀(2011∼2016년)을 이끌었을 때도 성적 부진으로 쫓겨났다. 2019년 11월 헤르타 베를린(독일)을 맡았지만 단 10주 만에 SNS을 통해 자진 사퇴를 통보하는 기행을 벌였다. 이후 3년간 누구도 불러주지 않았다. 그런 클린스만에게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맡아달라는 낭보가 전해졌다. 축구협회는 클린스만이 옷을 벗게 된 상황에 이르러서도 어떤 인선 과정을 거쳐 '왜 하필 클린스만'을 선임하게 됐는지 밝히지도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클린스만 감독과 코치진. [사진 = KFA] |
클린스만 근무 태만, 뜻모를 미소... 한국 정서와 동떨어진 태도
클린스만 감독은 당초 약속과 달리 한국에 거주하지 않았다. 자택이 있는 미국과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 한국민의 미움을 샀다. 축구팬 사이에선 '29억원짜리 알바'라는 조롱섞인 비난이 터져나왔다. 클린스만은 "대표팀 감독은 클럽 감독의 업무 방식과 다르다. 주요 선수들의 파악을 위해선 국제적인 시야가 필요하다"면서 "아시안컵 우승이 목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르단에 완패한 뒤에도 선수들의 분한 표정과 달리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국내 정서와 맞지 않는 행동을 보였다. 아시안컵을 마치고 귀국한 뒤엔 태도가 돌변했다. "아시안컵 4강이라는 성적은 실패라기 보기 어렵다"는 말을 남기고 귀국 이틀 만에 미국으로 떠났다. 아시안컵 부진에 대한 경기력 점검을 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조기 출국했다. 국내 축구팬과 지도자들은 "외국인 사령탑도 우리나라의 정서를 알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에서도 "국내 체류 기간 등 근무 태도가 국민을 무시하는 것 같다" "여러 약속을 지키지 않아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고 회복하기 불가능하다" 등의 평가가 나왔다. 클린스만은 '뜻모를 미소'만 남기고 떠났다.
클린스만 감독. [사진 = KFA] |
클린스만이 남긴 교훈... 지금이라도 외양간 고치자
클린스만은 축구협회가 1992년 A대표팀 전임 감독제를 도입한 이래 부임 후 5경기째 승리를 거두지 못한 최초의 감독이었다. '무색·무취' 전술, '해줘 축구' '운장(運將) 클린스만'이라는 팬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아시안컵 직전까지 6연승을 내달리며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기대감을 끌어올렸지만 '운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바레인에 3-1 신승을 거둔 한국은 요르단과 2차전에서 2-2로 비기더니 말레이시아와 3차전에서 3-3 무승부에 그치는 굴욕을 당했다. 사우디와 16강에서 연장 혈투 끝에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로 이겼고, 호주와 8강전에서도 연장전서 2-1로 진땀승을 거뒀다. 4강전에서 역대전적 3승3무로 압도했던 요르단을 상대로 '유효슈팅 0개'의 치욕과 함께 0-2로 완패했다. 지도력 없는 클린스만은 한국축구의 '황금 세대'를 '무능 세대'로 변질시켰다. 4강전 전날 '탁구 충돌'의 돌발 변수를 감안해도 이번 아시안컵 6경기에서 10실점은 역대 최악의 성적이다. 한국은 2011년 대회 7실점, 2015·2019년 대회 2실점에 그쳤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10실점은 한국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세 차례 대회에서 실점을 합친 11골에서 한 골만 부족한 수준"이라고 놀라워했다. 클린스만은 한국축구에 상처를 남겼지만 교훈도 주고 떠났다. 투명한 감독 선임과 책임있는 축구협회의 자세 등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고칠' 기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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