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칸 드림' 재점화
사업 기회 모색하려 한국 땅 뜨는 제조업 기반과 공급망
[서울=뉴스핌] 조수빈 기자 =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초록 불빛. 데이지의 집에서 새어나오는 그 불빛은 개츠비가 평생을 좇았던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다. 정체조차 명확하지 않은 그 빛은, 맹목적이고 불확실한 유혹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의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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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산업부 조수빈 기자. |
그린 불빛은 매번 다른 얼굴로 우리 사회 앞에 다시 나타난다. 미국 투자를 확대하는 국내 기업들의 행보에서도 낯익은 빛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한 번 미국의 부흥을 위해 반협박성 투자 유인을 발표하자 하나 둘 기업이 미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배터리, 철강, 반도체까지 국가 산업의 핵심이 국외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현지에 약 210억 달러, 한화로 31조원을 쏟아붓겠다고 선언했다.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그 기반을 이루는 현대제철의 철강 산업까지 미국으로 옮겨간다. 현대제철의 자동차 강판 공급 전기로는 60억 달러를 투자해 현지 공급망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의 선택은 장기적으로 가장 큰 수출 시장을 위한 사업적 결단이라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산업의 밸류체인이 통째로 옮겨갔다는 사실을 눈여겨 봐야 한다. 이는 비단 자동차 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국내 제조업 기반 산업이 관세에 떠밀려 미국행을 고민하고 있으며 그들의 협력업체는 현실로 다가온 공급망 해체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
같은 완성차 업체 중 수출의 90%가 미국인 한국 GM은 대표까지 나서 지속적으로 한국 철수설을 해명했다. 포스코는 지난달 20일 주주총회에서 "완결형 현지화 전략을 통해 미국 시장 입지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미국행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현대제철은 미국 투자 발표 시점과 맞물려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부품업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미국 테네시 공장의 타이어 생산량을 현재 연 550만개에서 올해 연 1200만개로 대폭 확대한다고 밝혔고 금호타이어 역시 미국 조지아 공장의 생산능력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이 옮긴 자리는 텅 비기 마련이다. 협력업체는 일감을 잃고, 산업 생태계는 변화를 따라 가지 못해 도태된다. 단기적으로는 '최대 매출 지키기'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산업 공동화'를 피할 수 없다. 한국산업연구원은 미국 생산량을 늘리면 한국 생산 대수는 현재의 20%에 상당하는 연간 70만∼90만 대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생산량을 늘리는 만큼 일자리도 빠져나간다.
아메리칸 드림은 결국 다른 나라에는 녹색 경고등이다. 이익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업이 '왜' 빠져나가는지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 투자가 몰리고 있는 미국 남부 지역은 다른 지역 대비 낙후되어 있고 에너지와 인건비가 저렴하다. 비용 절감을 이루어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공급을 받아줄 수 있는 대규모 시장과 저렴한 생산지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인건비를 포함해 모든 비용이 상승 중이며 에너지의 선택지도 많지 않다. 산업용 전력의 경우 대기업을 기준으로 하면 최근 3년간 약 70% 상승했으며 성숙한 내수 시장에 따라 보조금은 점차 축소단계다. 과거의 수출 기반 제조업으로 마련된 산업 전략이 바뀌어야 할 때다. 유연하지 못한 노동구조와 기업을 옥죄는 수많은 규제에 대한 재검토도 필수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한국형 드림'의 재정의다. 기업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산업 환경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건 미국의 투자규모가 아니라, 이 나라에 무엇이 비어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bean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