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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상) 과학교사가 던진 작은 질문

기사입력 : 2025년05월24일 08:00

최종수정 : 2025년05월24일 08:00

시대적 질문과 국가변화

왜 우리는 질문할까. 질문은 의심의 시작이자, 성찰의 출발점이다. 질문은 단순히 대답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질문은 사회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고,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변화시킬 것인가를 보여주는 척도다.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곳에서는 권위의 지배가 굳어지고, 토론이 실종된 곳에는 진실보다 주장이 자리잡는다. 이 글은 시대가 던져야 할 그런 질문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한 시도다.

과학 교실에서 시작된 질문

1925년 여름, 미국 테네시의 작은 도시 데이턴(Dayton). 당시 테네시주는 성경의 창조설에 반하는 내용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버틀러 법'(Butler Act, 1925)을 시행하고 있었다. 교사 존 스콥스 (John T. Scopes)는 과학 수업 시간에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버틀러 법은 미국 남부 지역의 보수적 종교정서와 정치적 보수주의가 결합한 결과로, 교육현장에서 과학적 사실과 종교적 신념이 충돌하는 원인을 제공해 주었다.

"교실은 왜 진실을 가르칠 수 없는가"를 고민하던 존 스콥스는 당시 데이턴 고등학교의 24세 임시 과학교사이자 풋볼 코치였다. 켄터키 대학에서 법과 지질학을 전공한 그는 생물 교과서인 『Civic Biology』(Hunter, 1914)에 따라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을 가르쳤다고 스스로 선언하며 지역 시민단체와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과의 합의하에 의도적으로 '버틀러 법'의 위헌성을 지적하기 위해 재판에 나섰다.

스콥스 원숭이 재판(Scopes Monkey Trial)이라고 명명된 이 재판은 전국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기 시작하며 미국 역사상 최초로 라디오로 생중계되었다. NBC, WGN 등 당시 주요 방송국이 실시간 중계를 진행했고, 전국의 라디오 청취자는 1,0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Larry Schweikart and Michael Allen, A Patriot'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2004). 당시 미국인구가 1억이 조금 넘었으니 10명 중 1명 꼴인 생중계를 청취한 셈이다. 재판을 직접 보기 위해 단 2주 만에 전국에서 약 5만 명이 작은 도시 데이턴을 찾았고, 도시 전체가 임시 박람회장처럼 변했다. 『뉴욕 타임스』는 1925년 7월 한 달 동안 1면과 주요 섹션을 포함해 총 36건 이상의 기사를 스콥스 재판에 할애했다. 『시카고 트리뷴』과 『내슈빌 배너』는 양 진영의 논리를 연속 칼럼으로 구성해 매일 국민적 토론을 유도했다. 이러한 보도 경향은 Jeffrey P. Moran의 『The Scopes Trial: A Brief History with Documents』(2002)와 Edward J. Larson의 퓰리처 수상 저서 『Summer for the Gods』(1997)에서도 상세히 확인된다.

재판의 전환점은 변호사 클래런스 대로 (Clarence Darrow)가 상대편 증인으로 나온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William Jennings Bryan)을 직접 신문한 장면이었다. 이들의 충돌은 단지 두 개인의 논쟁이 아니라, 두 시대정신이 충돌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재판 7일째, 1925년 7월 20일. 『뉴욕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의 보도에 따르면 법정은 일찍부터 사람들로 붐볐고, 바깥은 40도를 넘는 더위였지만 실내는 숨을 죽인 청중의 기대로 더욱 뜨거웠다. 클래런스 대로는 전직 국무장관이자 세 차례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이례적으로 증인석에 세웠다. 이 장면은 법률 역사상 전무후무한 순간으로 기록되었고, 『Summer for the Gods』(Edward J. Larson, 1997)는 이를 "이성이 신앙을 정중히 시험한 순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로의 질문은 브라이언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당신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습니까?" 질문은 이어졌다. "지구는 정말 6일 만에 창조되었습니까?", "카인은 누구와 결혼했습니까?", "고래가 사람을 삼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들은 논쟁을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믿음과 과학, 전통과 현대성 사이의 간극을 짚어내는 날카로운 도구였다. 브라이언은 처음엔 거침없이 답하며 응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황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내가 모르는 것도 있다"고 말하며 질문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 7월 21일자 보도는 이 장면을 "브라이언이 대로의 질문으로 땀을 흘렸고, 법정 안의 청중들은 몇 차례 웃음을 터뜨렸으며, 논리의 무게가 신념의 무게를 압도한 순간"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날 법정은 더 이상 법만을 다루는 곳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식과 신념, 권위와 가치, 종교와 이성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회적 무대였다. 대로는 단지 브라이언 개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 사회 전체에 묻고 있었다. "당신이 믿는 진실에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습니까? (불확실하다면) 당신은 미래세대를 위해 바뀔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 질문은 법정을 넘어 학교로, 신문으로, 가정으로 이어졌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가 어떤 질문을 받아들이고, 어떤 질문을 회피하는지가 민주주의의 수준을 결정짓는다. 질문을 받아 들인다는 것은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고, 회피한다는 것은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질서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질문으로 시작된 미국사회의 변화

스콥스는 벌금 100달러의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그 이후의 사회적 반향은 판결보다 훨씬 컸다. 1927년 테네시 고등법원은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유죄 판결을 무효화했으며, 미국 전역에서 진화론 교육을 둘러싼 논쟁은 이후 40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1968년 연방대법원은 『Epperson v. Arkansas』 판결을 통해 진화론 금지법이 수정헌법 제1조의 종교 자유 조항에 위배된다고 판결하였다.

교육 분야에서도 변화는 확연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캘리포니아, 뉴욕, 일리노이주 등 대도시 중심으로 생물학 교육과정에서 진화론을 정규 교육 내용으로 명시하기 시작했으며, 1958년에는 국가과학재단(NSF) 주도로 'BSCS (Biological Sciences Curriculum Study) 생물학 교과서 프로젝트'가 출범하면서 과학 교육 전반이 재정비되었다. 교사노조는 이후 수차례에 걸쳐 학문과 교육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적 근거를 법원에 제출했으며, 이는 미국 교육의 기본 원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 과학교사의 시대적 질문은 교육 현장을 넘어서 시민권 운동으로도 이어졌다. 1963년 워싱턴 행진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 (Martin Luther King Jr.)가 연설한 'I Have a Dream'은 단지 인종 문제뿐 아니라,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적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며, 이는 스콥스 재판이 만들어낸 '자유의 언어'와 맞닿아 있다.

이와 유사한 논쟁이 2010년 프랑스에서도 벌어졌다. 프랑스 의회는 공공장소에서 부르카와 니캅 등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복장을 금지하는 법률(법령 번호 2010-1192호)을 통과시켰고, 이는 곧바로 유럽 전역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내무부는 당시 법 제정의 목적을 "공공질서의 보호"와 "시민 간 평등한 교류"라고 밝혔지만,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를 "이슬람 여성에 대한 이중 억압"이라고 비판했다.

이 논쟁은 유럽인권재판소(ECHR)로까지 이어졌고, 2014년 7월 1일, ECHR은 『S.A.S. v. France』 판결을 통해 프랑스 정부의 조치를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판결문 제57항에서는 "국가는 공동체 내 공공적 삶의 조건을 보장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명시하며, 표현의 자유와 공공질서 간 균형 필요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같은 판결에서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 2인은 "이 법이 특정 종교를 명백히 겨냥하고 있다"는 우려를 함께 기록했다. 당시 프랑스 내 여론조사(Ifop, 2014년 6월)에 따르면 국민의 61%는 법을 지지했지만, 33%는 '과도한 국가개입'이라며 반대했다.

이처럼 스콥스 재판과 프랑스의 부르카 논쟁은 '국가가 어디까지 개인의 사상과 표현을 제한할 수 있는가'라는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시대를 넘고, 대륙을 넘고,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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