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Q 실적 월가 기대치 미달
선행 PER 200배 근접
고평가 IPO 종목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어도비 시스템스의(ADBE) 대항마로 기대를 모으며 지난 7월 말 뉴욕증시에 입성한 디자인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피그마(FIG)가 기업공개(IPO) 이후 내놓은 첫 분기 실적에 월가가 크게 실망한 표정이다.
상장 이전부터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고, IPO 이후 주가가 두 배 이상 뛴 만큼 첫 분기 성적표에 시선이 집중됐지만 결과는 애널리스트의 기대치에 미달했다.
피그마의 2분기 매출액은 2억4960만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41% 급증했지만 투자은행(IB) 업계의 전망치인 2억5000만달러에 못 미쳤다.
같은 기간 순이익 역시 84만6000만달러로, 사실상 손익분기점 수준에 그치면서 월가의 기대치인 주당 9센트에 미달했다.
향후 실적 전망치는 월가의 예상 수준을 웃돌았다. 업체는 3분기와 2025년 연간 매출액 전망치를 각각 2억6300만~2억6500만달러와 10억2100만~10억2500만달러로 제시했다. 이는 애널리스트의 예상치인 2억6200만달러 및 10억2200만달러를 완만하게 넘어서는 수치다.
지난 7월31일 상장 첫 날에만 250% 폭등했던 피그마는 2024년 2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때문에 이번 2분기 실적은 상당히 개선된 셈이지만 월가는 이보다 강력한 성과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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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증권거래소 플로어에 있는 전광판에 표시된 피그마 로고 [사진=블룸버그] |
업체의 주가는 지난 2일 실적 공개 후 시간외 거래에서 10% 폭락했지만 3일 3.9% 오름세를 회복하며 68.13달러에 거래를 종료했다.
상장 이틀째인 8월1일 피그마는 장중 한 때 142.92달러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수직 하락하며 IPO 이후 41% 내림세를 나타냈다.
증시에 입성하기 전 투자자들 사이에 번졌던 관심이 무색할 정도로 주가가 브레이크 없는 하락을 연출했지만 투자은행(IB) 업계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시장 조사 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업체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내놓은 11개 투자은행(IB) 가운데 매수 추천이 4건에 그쳤고, 나머지 7개 업체는 '보유' 의견을 내놓았다.
문제는 밸류에이션이다. 미국 금융 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가파른 주가 하락에도 피그마는 12개월 예상 실적을 기준으로 200배에 달하는 주가수익률(PER)에 거래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보고서에서 "피그마가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에 비해 상당한 프리미엄에 거래되고 있다"며 "지난 2022년 200억달러에 피그마 인수를 추진했던 경쟁사 어도비도 선행 PER이 17배"라고 전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당시 인수합병(M&A) 계획은 독과점 우려가 불거지면서 2023년 12월 최종 무산됐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피그마의 실적 발표가 고평가된 IPO 종목 전반에 대한 투자자들의 매수 심리를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6월 주식시장에 입성한 첫날 고공행진 했던 스테이블코인 업체 서클 인터넷 그룹(CRCL)도 8월 견고한 실적을 내놓았지만 최근 주가 상승 열기가 한풀 꺾였다.
두 개 종목 모두 IPO 직후 고점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공모가를 크게 웃도는 상황이다. 서클은 상장한 뒤 2주만에 300달러에 근접한 뒤 120달러 선으로 주저앉았지만 공모가 31달러의 약 4배에 거래되고 있고, 피그마 최근 종가 역시 공모가 33달러를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피그마의 단기 상승 여력이 주가에 충분히 반영된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경쟁 심화로 인한 시장 점유율 하락 리스크와 인공지능(AI) 기술이 가져올 잠재적인 파장의 경우 주가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AI와 관련, 프라비어 멜와니 피그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AI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한편 플랫폼을 확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RBC 캐피탈 마켓 역시 보고서를 통해 "AI가 애플리케이션 디자인과 개발을 단순화 해 피그마의 사업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오히려 순풍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RBC는 주가가 크게 고평가된 상태라고 진단하며 보다 나은 진입 시점을 기다리는 전략을 추천했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