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짚고 헤엄치는 신평사, 해외로 배당금 줄줄
[뉴스핌=김선엽 기자] STX와 웅진에 이어 최근 동양그룹까지 국내 대형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국내기업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신용평가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기업에 대한 신용평가를 독점하고 있는 3대 신용평가사들은 고수익·고배당을 누리는 모습이다.
특히 이 이면에는 국내 신용평가사의 최대주주인 국제신용평가사들이 평판보다는 배당에만 집착하는 행태가 자리잡고 있어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5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말 기준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의 평균 총자산순이익률(ROA)는 28.6%이다.
이는 전산업 평균인 2.4%의 12배에 이르는 수치다. 전문서비스업으로 분류되는 회계·법무·세무 업종 평균인 6.2%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은, ROA가 높을 뿐만 아니라 결산 때마다의 고배당도 어마어마하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가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신용평가의 배당성향(배당/당기순이익)은 2009년부터 4년 연속 90%다. 피치(Fitch)가 73.6% 가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기업평가의 배당성향도 최근 3년간 65%를 유지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의 50%를 훌쩍 뛰어 넘는다. 무디스 기업 전체의 최근 5년간 평균 배당성향은 22.0%에 불과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단순히 수익을 많이 내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과점체제 상황에서 안정적인 수익과 고배당이 반복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용평가사들이 이처럼 안정적인 수익을 오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신용평가 시장이 과점체제라는 점 때문이다.
<자료: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재인용> |
또한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지점 형태로 직접 진출하지 않고 국내 신용평가사에 주주 형태로 투자한 상태다.
'관대한' 신용평가를 내놔도 평판 리스크는 지지 않기 때문에 주주이익 극대화 차원에서 당기순이익을 늘리기 위한 비즈니스 차원의 신용 평가가 횡횡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나이스신용평가 등 3개 신용평가사가 국내 기업 회사채에 부여한 등급 가운데 A등급 이상이 79%다. 사실상 신용평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은 거시건전성분석국 김낙현 과장은 "글로벌 신용평가회사가 주주 자격으로 국내 신용평가회사를 지배할 경우, 스스로의 평판리스크는 최소화하면서 배당수익 극대화를 위해 단기실적을 중시하도록 요구할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결국 느슨한 신용평가로 이어져 신용평가의 신뢰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용등급이 회사채 발행자의 신용위험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정부도 해결책을 찾고 있다. 특히 지난해 3월 금융위원회는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내놨지만 아직까지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시장참여자들이 우선적으로 회사채 발행사와 평가사 간의 이른바 '갑을관계'가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 신용평가사의 활동을 일정 부분 '공기(公器)'로 취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신한금융투자 강성부 애널리스트는 "현재 기업이 100% 부담하는 신평사의 수수료 중 일부를 기금의 형태로 마련해서 신평사에게 지불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피평가기업이 '등급쇼핑(발행사들이 여러 신평사들을 사전에 접촉해 더 좋은 신용등급을 제시하는 곳을 선택하는 현상)'을 하지 못하도록 금융당국이 신평사 중 한 곳을 지정하는 '순환평가제'도 고려할 만 하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