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1부 '象을 찾아서 5월25일 개막
개인전 2부 '동백꽃 지다' 그의 역사화가 한자리에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작가 강요배(65)는 ‘그림은 무엇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다음으로 ‘어떠한 그림이 그림다운 그림이냐’를 생각한다. 스스로 내린 '그림다운 그림'에 대한 답은 '상(像)'이다.
'수직·수평면 풍경' 작품 앞에서 강요배 작가. 이 그림은 작가의 작업실 앞 풍경이다. 수직은 검게, 수평은 하얗게 그렸다. 공기와 빛을 명암으로 식별하는게 아니라 '설경'은 수직과 수평만으로 끝날 수 있는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는 작품. [사진=학고재] |
강요배의 개인전 1부 ‘상(象)을 찾아서’가 개막한 25일, 전시가 열리는 학고재에서 강 작가를 만났다. 그는 사진이 일상화된 현 사회에서 ‘그림다운 그림’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작가에 따르면 그림과 사진의 분명한 ‘차이’는 강렬함을, 현상을 사실적으로 담느냐, 인상적인 순간을 떠올려 회화적으로로 표현하느냐다. 강 작가는 “그림이 사진과 똑같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보지 않고도 마음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마음껏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제주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자연과 동물, 그리고 제주도에서 생활하는 강 작가 일상에 비친 풍경이다. 구름 사이에 햇빛이 쏟아지는 순간, 눈이 그치고 햇빛이 쏟아지는 한라산 정상의 설경, 거침없는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올라가는 모습,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청량한 가을 하늘, 작가의 작업실 앞 눈이 내린 풍경 등 그의 뇌리를 스친 절묘한 순간들이다. 일상에서 포착한 강렬한 요체, 그가 기억하는 찰나가 캔버스에 물들었다.
1월 한라산, 2007, 캔버스에 아크릴릭, 65.2x100cm [사진=학고재] |
언뜻 보면 사생화로 착각하기도 쉽다. 제주에서 본 풍경을 사진을 찍어와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강요배 표’ 추상화다. 그가 마음에 품은 순간을 떠올려 작업한다. 강 작가는 “그림은 밖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느낌과 흐름을 마음에 간직했다가 끌어당겨 꺼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상은 기하학적으로 표현하거나 애매한 그림이 아니다. 상을 끌어내는 것이 추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 그림은 ‘추상화’다”라고 설명했다.
전시 주제가 ‘상(像)을 찾아서’인데, 이 ‘상’은 ‘코끼리 상’이다. ‘코끼리 상’은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등 미술 용어에서 ‘이미지’를 뜻하는 글자다. 옛날 보기 드문 동물이었던 코끼리를 묘사하기 위해 말 대신 그림을 그려 설명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물건의 모양을 본떠 그린 형태나 마음속에 떠오르는 추상적 이미지 자체도 포함한다. 강 작가는 “표피적인 이미지가 아닌 좀 더 압축된 것, 마음에 찍히는 게 상이다. 이를 잡는 건 본연의 몫”이라면서 “기억의 요체,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것 중 마음에서 꺼낼 줄 알아야 한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치솟음' 작품 앞에서 강요배 작가. '치솟음'은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올리가는 장면을 그린 그림. 작가는 가슴 속이 갑갑할 때 깊이 뇌리에 박힌다고 고백했다. [사진=학고재] |
이 전시를 마치고 이어서 열리는 2부 전 ‘메멘토, 동백’은 6월22일부터 7월15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다. ‘동백꽃 지다’로 널리 알려진 강요배의 역사화를 한자리에 모으는 전시다. 1989년부터 2017년까지 작업을 ‘동백꽃 지다’와 ‘동백 이후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 아래 선보인다. 1부 전시는 5월25일부터 6월17일까지 관람 가능하다.
제주 출신인 강요배 작가는 아버지가 4·3항쟁을 겪었다. 그가 4·3항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 신문사에 소설가 현기영의 ‘바람 타는 섬’ 삽화를 그리면서다. ‘바람 타는 섬’은 일제 강점기에 제주 해녀들의 생존권 투쟁이 항일운동으로 발전한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삽화를 그리는 1년 간 그는 제주 역사를 공부하게 됐고, 그 문제를 직면하게 됐다. 1989년 삽화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제주 4·3 항쟁 공부에 매진했다. 이를 바탕으로 4·3항쟁을 담은 작품 50여 점을 완성해 ‘강요배 역사그림-제주민중항쟁사’를 학고재에서 선보였다. 이 전시로 4·3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4·3의 역사화를 그리고 전시회를 마친 후 심신이 지쳤던 강요배 작가는 고향 제주로 돌아갔다. 제주의 역사를 알고 난 후 그가 본 제주의 자연은 감정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이후 강요배는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담은 ‘4·3 50주년 기념-동백꽃 지다’(1998) 순회전, ‘땅에 스민 시간’(2003), ‘풍화’(2011) 등 전시를 선보였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