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핌] 장주연 기자 = 가족을 지극히 사랑하는 한 남자는 말을 팔기 위해 이웃들과 함께 읍내 장터로 나간다. 하지만 장터에서 돌아오던 길 남자는 말도둑들에게 살해당한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옆에는 남자가 아이들에게 주려고 데려온 새끼 고양이만 남았다.
남자의 아내는 장례식을 치르고 아이들과 친정에 돌아가기로 한다. 그런데 그때 8년 전 소식 없이 떠났던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난다. 여자의 아들과 닮은 그 남자는 가족의 이사를 돕고, 그 과정에서 말도둑들과 맞닥뜨린다.
영화 '말도둑들, 시간의 길' 스틸 [사진=BIFF] |
영화 ‘말도둑들, 시간의 길’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이자 2017년 BIFF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 선정작이다. 영화제의 지원을 받아 만든 작품을 개막작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BIFF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 더욱이 연출을 맡은 카자흐스탄 출신의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 감독은 2015년 ‘호두나무’로 BIFF 뉴커런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예를란 감독은 이번 작품을 일본의 리사 타케바 감독과 함께 연출했다.
이야기는 구소련의 붕괴와 중앙아시아 국가의 재건이란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전개된다. 리사 감독은 “소년이 아버지를 잃은 과정과 하루아침에 국가를 잃어버리는 과정이 겹치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영화에서는 절대 알아챌 수 없지만(여느 영화제 출품작처럼 이 영화 역시 친절한 작품은 아니다), 후반부 등장하는 남자에게도 ‘누명으로 시베리아 감옥에 투옥됐다가 소련이 붕괴면서 돌아왔다’는 전사가 있다.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건 이 영화의 강점이다. 사실 ‘말도둑들, 시간의 길’이 대단히 흥미로운 서사 구조를 취하거나 엄청난 스펙타클의 결투신을 품은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밋밋한 맛이 크다. 이 아쉬움을 상쇄하는 게 자연이다. 중앙아시아의 푸른 하늘과 드넓은 초원을 롱숏으로 담아 와이드스크린 위로 펼쳤다. 이 영화의 촬영은 2013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아지즈 잠바키예프 촬영감독이 맡았다.
배우들은 대사, 행동부터 감정까지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다. 남편을 잃은 여자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아이카’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카자흐스탄 배우 사말 예슬랴모바가 열연했다. 여자를 찾아오는 또 다른 남자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 ‘분노’(2016) 등에 출연한 일본 배우 모리야마 미라이가 맡았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카자흐스탄 인물로 모리야마는 현지 언어로 역할을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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