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회계·노란봉투법 이슈에 노정갈등 최고조
한노총 출신 이정식 장관, '중재자' 기대 못미쳐
[세종=뉴스핌] 이수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노정관계 중재를 위해 한국노총 출신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선임했지만 노정 갈등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 장관은 노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윤 정부 안에서 갈등을 중재해야 할 입장임에도 사태를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부 '압박'에 갈 곳 잃은 노조…고용부 장관도 가세
27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최근 윤 정부가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 회계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노조를 대상으로 정부 지원금을 중단하거나 환수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노동개혁 추진 과정에서 촉발된 노정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서울=뉴스핌] 김보나 인턴기자 =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권의 노동탄압·노조혐오 규탄 및 언론의 공정보도' 촉구를 위한 언론노조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3.02.27 anob24@newspim.com |
고용부가 지난해 말부터 약 한 달 동안 노조 327개를 대상으로 회계 관리 자율점검을 진행한 결과, 327개 노조 가운데 36.7%(120개)만이 정부 요구에 따라 회계 관리 점검 결과서와 증빙자료를 제출했다.
정부는 2주 시정기간 이후에도 노조 회계 관리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을 경우 내달 15일부터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가 노조 회계 관리에 나서는 것은 노조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어 한동안 노정 간 파열음은 지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정부의 노조 압박이 거세지고 있으나 정작 노정 사이를 중재해야 할 고용부 장관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장관이 노조와 관련한 입장을 직접 언급한 적은 있다. 다만 하나 같이 노동계에 반하는 입장을 피력하다보니 노동계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일 이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대책을 보고하면서 "회계장부 비치 보존 결과를 제출하지 않은 207개 노조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6일에는 노동계가 찬성하는 노란봉투법 입법과 관련해 "법치주의와 충돌하는 입법이며, 노동개혁은 노사법치"라면서 노동관과 관련한 현 정부의 기조를 강조했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를 하지 못하게 막거나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외에도 이 장관은 지난해 화물연대 총파업 때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가 국가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국민의 생명, 건강,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 "노조 출신 고용부 장관, 중재 역할 나서야"
현실적으로 윤 대통령이 노조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 이 장관 홀로 다른 주장을 펼치긴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을 비롯해 국토교통부 등 타 부처까지 노조에 대한 혐오 여론을 조성하는 마당에 이 장관이 이를 방기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란봉투법 입법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3.02.20 yooksa@newspim.com |
애초 이 장관은 한국노총 출신으로, 노동계는 장관 선임때부터 노동시장 이해도 높은 이 장관을 통해 노동계 입장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막상 자리가 바뀌자 현 정부 안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향후 주52시간 근로시간이나 임금체계 개편 등 노정 갈등이 더욱 극에 치닫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여느 때보다 이 장관의 중재 역할이 절실해 보인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건폭(건설현장 폭력)'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노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태다. 이달 21일에는 "올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헌법 근본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며 노조 정상화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노조 관계자는 "올해 정부 업무보고에서 고용부는 화물연대 불법행위에 법·원칙에 따라 대응한 것을 성과로 보고했다"면서 "법과 원칙을 엄격히 적용한 결과가 모든 정부 부처가 발 벗고 나서는 노조 탄압이라면 진짜 문제는 현실에 맞지 않는 법과 원칙 그 자체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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