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최대 40년 제한 조치로 시장 퇴출
"은행권 대출심사 느슨하다"며 추가 규제 압박
집값 우상향에 초장기 대출 요구 지속 확대
전문가들 "단순 규제 아닌 시장 상황 반영해야"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은행 탓이다."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50년 주담)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퇴출을 결정한 금융당국은 50년 주담대로 인한 시장 혼란을 은행탓으로 돌렸다. 대출이 급증하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우회 및 투자악용 등 다양한 부작용을 은행이 몰랐을 리 없다며 이들의 느슨한 대출심사행태를 바로잡겠다고 엄포했다.
50년 주담대는 8월 한달에만 5조1000억원이 늘었다. 전체 가계대출 증가분 6조2000억원의 80%가 넘는다. 40년 만기 환산시 DSR은 54.6%로 규제 기준은 40%를 넘겼다. 대출 이용자 중 무주택자 비율이 절반 이하(47.7%)에 그쳤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지적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은행권의 공식적인 입장은 "정부 방침에 맞춰 차체적인 대출심사를 강화하겠다"로 정리된다. 하지만 꾹 억누른 불만은 상당하다. 익명을 전체로 한 대화에서는 거친 표현도 터져 나왔다. 50년 주담대가 왜 등장했고 이로 인한 논란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언급없이 모든 책임을 은행으로 돌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 시중 은행의 대출 창구 모습. [사진=뉴스핌DB] |
정부는 올해 1월 연 4% 고정금리로 최대 50년만기까지 가능한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했다. 나이제한(50년 만 34세 이하)이 있기는 했지만 소득에 상관없이 누구나 받을 수 있고 특히 DSR도 적용되지 않는다. 1년간 한시로 운영하는 이 상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총 공급 예정액 39조6000억원의 90% 이상이 3분기만에 소진됐다.
이로 인해 초장기 대출을 향한 고객들의 '니즈'가 폭팔했다는 게 은행권 설명이다. 침체됐던 부동산 시장이 서서히 회복하며 주택매매를 위한 대출도 꿈틀거렸다. 고금리에 대출 만기를 늘려서라도 월납입 부담을 줄이려는 사람도 급증했다. 이런 수요에 맞춰 50년 주담대가 등장했다고 덧붙였다.
50년 주담대 '폭증'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 올해 공급된 50년 주담대 전체 규모는 8조3000억원. 1~6월까지는 1조4000억원에 불과했지만 7~8월 두달동안 6조7000억원이 몰렸다. 금융당국이 시장 혼란을 이유로 퇴출 가능성을 거론하기 시작한 시점과 겹친다. '막차'를 타려는 심리가 폭증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나온 상품이다. 은행이 작심하고 시장을 흔들기 위해 50년 주담대를 만들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연착륙만 잘 유도했어도 혼란은 없을 수 있었다. 40년은 괜찮은데 50년을 만들어서 일이 커졌다는 식의 주장, 특히 은행이 탐욕으로 50년 상품을 만들어 일이 커졌다는 말은 용납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이 50년 주담대를 퇴출했다고 가계대출이 줄어들 거라고 보는 전문가는 없다. 주택경기가 서서히 회복함에 따라 주담대 증가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평생을 모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집값이 비싸진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금액을 최대한 오래 빌리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부동산 관계자는 "주담대를 다 갚겠다는 생각으로 받는 사람은 없다. 집값이 오르면 그 차익으로 남은 부채를 해결하면 된다는 계획으로 집을 산다. 만기동안 갚아야 할 이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집을 팔 때까지 내는 금액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중요한 셈이다. 초장기 주담대를 향한 니즈는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금융당국은 추가적인 규제도 예고했다. 50년 만기 등장의 마중물이 된 특례보금자리론도 서민과 실수요층을 위한 상품만 유지한다. '갚을 수 있는 수준의 대출'만 받으라는 게 규제의 핵심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반면 시장은 '갚을 수 없는 수준의 대출'을 감수해야지만 자산증식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된지 오래다. 전 정권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듣다가 '벼락거지'가 된 학습효과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출 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미다.
책임론보다 중요한 건 50년 주담대로 인해 국민들의 혼란이 커졌다는 점이다. 기준점이 돼야 할 정책이 논란만 남긴셈이다. "막차 탄 사람이 승자"라는 허탈한 지적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제대로 된 가계대출 정책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peterbreak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