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환헤지 '덜 투명하게'…시장 기대 차단
확장재정·대미투자·유동성 과잉론에는 선 그어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달러/원 환율이 1480원을 돌파한 것과 관련해 '위기'라고 진단했다. 유동성 과잉, 정부의 확장 재정, 대미투자액 규모 등의 환율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선을 그은 가운데 환율관리 대책으로 '수급' 관리에 집중한다는 방침을 냈다. 사실상 서학개미·수출기업 등 수급요인 대응에 역량을 모으는 방향이다.
이 총재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현재 환율 수준은 위기라 할 수 있고 걱정이 심하다"고 말했다. 관련해 이날 외환시장에서는 한때 달러/원 환율이 1482.3원까지 뛰어 지난 4월 9일(1487.6원) 이후 8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금융 위기는 아니지만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고 우리 내부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 보는 사람이 극명히 나뉘게 된다"며 "성장 양극화 등을 생각할 때 환율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피력했다.

특히 이 총재는 최근 환율 급등의 주된 요인에 대해 '수급'을 지목했다. 서학개미와 수출기업 등의 달러 구매 수요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는 "수급 요인에 의해서 환율이 굉장히 빠르게 오르내리는 등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수급 요인을 조정을 해서 (환율 레벨 관리에) 대응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국민연금과 함께 추진하는 '뉴 프레임워크' 등을 바탕으로 수급 요인 대응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한국은행은 지난 15일 국민연금과 650억 달러(약 95조원) 한도의 외환스와프 계약을 내년 말까지 1년 연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또한 외환시장 안정과 국민연금 수익성을 조화시키려는 '뉴 프레임워크' 수립도 준비 중이다.
이 총재는 '뉴 프레임워크' 방향성과 관련해 "국민연금 해외투자 의사결정이 너무 투명하게 알려져있어 환율이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형성한다"며 "헷지 방식 등을 덜 투명하게 전략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어제 국민연금과 복지부 고위 관계자 회의에서 전략적 환헤지 등을 할 때 너무 투명하지 않고 유연하게 하는 방안을 약속하는 등 큰 진전이 있었다"며 "우리가 패를 다 까놓고 게임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달러로 평가하는 방안 등도 제안했다. 이 총재는 "현재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전부 원화로만 평가되는데 해외로 나갈 때는 원화가 절하돼 수익률이 높게 보이지만 막상 가져올 때는 원화가 절상되면서 수익률이 떨어진다"며 "중장기적으로 환헤지를 고려하고, 명목 수익률이 아닌 실현 수익률로 판단하는 것이 어떨 지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투자자들도 이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국민연금 운용 방안에 대해 "10년 전만 해도 개인들의 해외투자가 저조했지만 갈수록 개인들이 해외투자에 나서기 때문에 국내 주식시장, 고용 등을 거시적 파급효과를 고려해 국민연금 자산을 운용할 때가 되지 않았나 고민이 필요하다"고도 피력했다.

또한 '정부의 확장 재정', '대미투자액 규모' 등의 환율 영향성에 대해 이 총재는 '제한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2027년까지 확장 재정이 불가피하다'는 최근 정부 기조 관련 견해를 묻자 "아직 판단하기 시기상조"라고 했다.
그는 "금리 정책을 펼 때 재정 정책을 직접적인 변수로 보지 않는다"며 "올해 초 예외적으로 추경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는데 당시에는 성장률이 0%에 가까웠고 물가도 2%보다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의 경우는 물가 성장률 등이 어떻게 될지를 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간 200억달러 수준의 대미투자규모가 원화 절하요인 중 하나라는 일각의 우려에도 반박했다. 이 총재는 "연간 200억달러 투자액은 송금 자체가 외환 시장에 주는 영향이 없을 때 진행하도록 되어있다"며 "외환 시장에 위협을 주는 수준으로 돈을 지급할 생각은 없고, 투자 자체로 장기적인 원화 절하가 이뤄진다는 것은 과도한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앞서 한국은행은 '시중 유동성 과잉'이 환율, 집값을 밀어올렸다는 우려에도 '과도하다'고 피력한 바 있다. 한국은행은 전날인 16일 블로그에 '최근 유동성 상황에 대한 이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최근 유동성 증가 속도는 과거 금리 인하기 평균 수준"이라며 "환율의 경우 해외증권투자 규모가 1171억달러로 사상 최대 수준이며 수출기업의 외화 보유 성향이 강화되며 수급 불균형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다만 환율 상승 관련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수단이 '수급'에만 집중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이 총재는 '외환당국이 환율 상승 책임을 서학개미에 전가한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한미 간의 경제 성장률 차이, 한미 간의 금리 격차, 코리아 디스카운트 등 장기적인 요인을 고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시간이 걸리는 문제만 얘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수급 요인을 조정할 필요가 있고 고민하는 차원이지 특정 그룹을 탓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romeo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