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의 ‘한 지붕 두 어록’이 외환시장을 일부 교란하고 있다. 경제 펀더멘털을 둘러싼 부총리와 실무자 사이에 엇갈린 발언이 나온 것. 누구의 견해가 진정 정부의 것인지 ‘진실게임’의 모양새가 드러나고 있다.
이같은 발언 혼선은 시장 참가자들을 혼란시킴과 동시에 원성을 듣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최근 시장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1,170원’ 레벨과도 연계가 돼 있다.
◆ 부총리와 실무진과의 코드 불일치?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인터넷 국정신문 <국정브리핑>과 한 인터뷰에서 “태풍이 다소 영향을 미치겠지만 긍적적인 국내외 경제 지표와 피해복구 대책의 조기 집행을 통해 당초 성장 목표인 3%대 달성은 가능할 것”이라며 “4분기가 되면 경기 회복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내년에는 4~5%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의 근거로 △ 세계 경제의 회복을 비롯, △ 주식시장 등 국내 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 올들어 두자릿 수의 증가율을 이어가는 수출 호조세가 계속되는 한편 △ 신용카드 문제가 완화되면 내수도 회복될 것 등을 들었다.
이같은 발언을 종합하자면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은 아직 양호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수출 호조세의 지속과 내수 회복에 대한 자신감은 경기 회복의 단초가 될 것임을 분명히 한 것.
반면 재경부 한 실무진의 얘기는 이와 엇갈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윤여권 재경부 외화자금과장은 일부 외신과의 전화 통화에서 “경제 펀더멘탈과 유리된 지속적인 원화절상 크게 우려한다”며 “정부는 외환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필요시 안정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언론을 통해 현재 일본 엔화와의 동조화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 일본의 경제회복세가 뚜렷한 반면 한국은 태풍 등으로 수출차질이 예상되고 경제성장률이 3%를 넘기 어려운 상황이라 원화가 강세를 지속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얘기는 원화 강세가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에 현재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지 않다는 점을 든 것이다.
◆ 시장의 혼선, “정부의 이중적인 모습”
이같은 엇갈린 시각은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부총리와 실무진 사이에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인지, 그렇지 않으면 실무진에서 외환시장 개입의 논거를 마련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는지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지난달 하순이후 당국은 1,170원 사수에 사력을 쏟고 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 8월 22일 1,169.50원까지 내려선 뒤 4주째 1,170원에 방화벽을 쌓아놓고 있는 것. 이 기간동안 1,170.00원을 종가로 기록한 거래일도 3일이나 되며 번번이 1,170원 하회 시도가 막히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같은 ‘학습 효과’로 하락 요인에도 불구, 적극적인 달러매도에 나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시장 참가자들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당국 실무진의 펀더멘털 논리를 수긍하는 측면이 있는 한편 부총리와 실무진의 ‘한 지붕 두 어록’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일부 시장 관계자는 이를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탓했다. 그는 “한쪽에서는 펀더멘털이 좋다고 하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고 하니 솔직히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펀더멘털이) 분명 좋아질 거라 생각하면 차라리 1,170원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당국의 필요에 따라 한 쪽에서는 기대감을 가져도 좋다는 발언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엉뚱한 발언으로 혼란을 야기한다는 뜻이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몸이 좋지 않으면 확실히 아파야 하는데 안 아픈 척도 한다”며 “주사만 놓고 있으면 그게 능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당국 입장에서도 분명 명분이 있겠지만 수출을 살리겠다고 한쪽을 죽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환율에 대한) 정책목표가 긴급이니만큼 한편에서는 이해를 하지만 외환시장은 시름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논리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얘기도 있다.
한 시중은행 딜러는 “당국 실무진의 언급은 논리발굴 차원에서 이뤄진 것 같다”며 “그러나 (펀더멘털이) 안 좋기 때문에 사야할 이유는 제시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수급 논리로 봐야지 펀더멘털이 외환시장에 당장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며 “국내외 요인을 봐도 사야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당국의 1,170원 봉쇄논리에 어느정도 수긍하는 관계자도 있다.
한 시중은행 딜러는 “당국의 펀더멘털 논리에 기본적으로 공감을 한다”며 “펀더멘털만 보면 그리 많이 빠질 장세는 아니며 급락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각국이 환율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라고 손을 떼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 당국 의도는 명확, “수출경쟁력 유지“
재경부 실무진의 의도는 명확해 뵌다. 과거에도 부총리와 실무진 사이에서 엇갈린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일단 부총리 발언보다 실무진의 발언에 좀 더 무게감을 두는 편이다. 당장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기 때문이다.
재경부는 무엇보다 설비투자 회복이 미진한 현시점에서 경기회복의 유일한 디딤돌로 인식되고 있는 수출을 위해 환율방어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환율이 수출경쟁력에 당장 영향을 미치기 때문.
재경부는 환율방어를 위해 앞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발행했으나 잔여한도가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상태다. 추가 발행을 위해 다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할 상황이 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 삼간을 태우는 일은 없’기를 바라고 있다. 일부에서 수출을 살리겠다고 시장 자율성을 무시할 때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시장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한 시장 참가자는 “말로는 시장 자율을 외치지만 정작 시장 원칙을 존중하고 있는 지 의문스럽다”며 “이런 식으로 막다가 뚫리면 봇물 터지듯 아래로 밀릴 수가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김준수 기자 jslyd01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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