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환당국의 개입 명분이 약화되면서 입지가 축소되고 있다. 국내외 언론을 통해 외환정책에 대한 우려와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수출 등의 경제지표와 제반여건이 당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 당국은 일일이 이에 대응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 않으나 외환정책의 신뢰도에 금이 가고 있다는 신호가 국내외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특히 시장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혐의를 받는 당국의 간섭에 대해 시장 일각에서는 “가두리 양식장”이니 “꼭두각시 장”이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를 내놓기도 한다. 시장 논리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 적절치 않은 개입에 따른 무역분쟁이나 외국인 투자의 회피 가능성 등 부작용을 염려하는 견해도 있다. 이는 장기적인 동북아 금용허브를 구축하기 위한 중장기 외환시장 발전방안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외환시장 참가자나 시장 규모 확대는 아직 요원한 과제다. 그러나 당장 당국이 그동안의 입장을 선회, 환율 하락에 대해 ‘대범’한 자세를 가질 것으로 전망되지 않는다. 당장 경기회복이 급선무인 정책적 입지를 감안하면 뾰족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조정)’은 너무 진부하고 궁핍한 수사다. ◆ 개입 부작용 우려 파이낸셜타임즈(FT)는 한국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에 대한 역효과 가능성을 지적했다. 국제통상에서 분쟁이나 외국인 투자회피 등이 경고된 것. 이는 앞선 1~2개월동안 당국의 ‘환율경비구역(FSA)’이 설정돼 환율 하락을 강력하게 제한하면서 꾸준히 지적돼 온 것으로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한 불안 등이 이를 방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FT는 이 기사에서 “한국은 경기회복을 위해 수출을 계속 늘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며 “환율정책 외에는 뚜렷한 정책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당국의 그것이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시장 개입이 수출을 확대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인식이 대내외적으로 비교적 뚜렷하다. 내부적으로 부동산가격을 잡기 위해 온갖 방책을 동원하고 있는 판이라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당국이 원-엔의 디커플링(비동조화)를 강조하고 지지하는 것도 일본과의 수출경쟁력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엔/원 환율이 한달반 사이에 100엔당 1,000원에서 1,100원에 육박할 정도로 일본과의 경제 펀더멘털이 그렇게 크게 벌어졌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한달만에 엔/원이 그렇게 많이 오른 것은 실질적인 경제 펀더멘털 차이보다 당국의 의지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며 “당국이 이전의 시장 컨센서스였던 10대1 수준을 바꿔서 이를 추세화시키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엔화 대출 기업에 대한 피해보다 일본과의 수출 가격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수출회복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현재 원-엔 10.8대1 정도면 물이 중소기업 목까지 찼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국내 일부 언론에서 역외선물환(NDF)시장을 통한 개입에 따른 외환보유액의 신뢰감 상실을 지적했다. 지난달 하순 G7회담 직후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본격적으로 단행된 NDF개입에 따른 외환보유액의 자의적인 조정 가능성을 제기한 것. NDF 개입분의 만기가 돌아올 경우, 당국이 이를 단순 정산하면 외환보유액에 변함이 없는 반면 현물환으로 매수하면 외환보유액이 증가한게 된다는 것. 또 NDF개입분에 대해 만기연장하면 NDF개입을 반복하는 것이 된다. 한국은행은 이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기준에 따라 정확하게 외환보유액을 산출 공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미 최근 급격하게 불어난 외환보유액의 증가가 개입에 따른 결과임을 잘 알고 있다. ◆ 외평채 발행의 한계 외환당국이 최근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개입수단 중의 하나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이다. 지난 9월 하순 원화가치의 급등을 막기 위해 시장에 적극 개입한 당국은 한동안 외평채 추가발행 없이 한은 차입을 통해 개입에 나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통안채 발행을 통한 원화 흡수 개입이 한계에 직면하자 외평채 발행을 통한 실탄마련에 적극 나섰다. 지난 24일 국회는 정부가 요청한 5조원 규모의 외평채 발행한도 확대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 9조원 발행한도 가운데 남은 2조8,000억원에 대해 30일 1조5,000억원에 이어 다음달 7일 1조3,000억원을 발행한다는 소식을 전파했다. 또 최중경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5조원 증액분에 대해서도 한도 소진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피력, 당국의 개입 여력이 든든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같은 외평채 발행에 대한 손실 우려나 국민 혈세 낭비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지난 9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는 《2002 회계연도 기금결산 검토 보고》를 통해 외평기금의 2002년 당기순손실은 1조7,896억원으로 2001년(1,606억원)보다 10배 이상 늘어 연간기준으로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대규모 비용을 들인 정부의 환율안정노력에도 불구, 개입 효과가 의문시되므로 기금 효율성 제고와 불필요한 시장 개입을 막기 위해 사후 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환율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통해 올 외평기금에서 발생하는 손실 규모는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 연구위원은 “외평채 발행으로부터 발생하는 손실은 외환시장 및 금융시장 안정 달성을 위한 비용으로 볼 수도 있다”며 “그러나 외평채는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 채권이므로 외평기금의 과도한 손실은 정부 재정 및 국민 부담 증가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이김준수 기자 jslyd01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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