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강자 중심 '승자독식' 확대
- 금융위, 퇴직연금 규제책 '삼성 맞춤형' 논란
- 無논리 50% 규제 비중, '숫자의 함정' 비판도
- 최초 제안자 '자본硏'도 '무리한 규제' 수긍
[뉴스핌=홍승훈 기자] 퇴직연금 시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어설픈 규제로 퇴직연금시장 후발주자들은 죽고 기존 시장 강자 중심의 '승자독식' 시대가 확대될 전망이다.
퇴직금이 실제 적립돼 운용되는 자산관리회사에 대해선 어떠한 규제도 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컨설팅 중심의 중소형 운용관리회사에만 50% 규제책을 들이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규제냐", "취지는 공감하지만 방법론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업계 일각에서 쏟아지는 이유다. 결국 금융당국이 경제민주화라는 틀에 갇혀 퇴직연금제도의 기본 틀조차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 금융위 '야심찬 계열사 밀어주기 50% 규제', 승자독식 확대 야기
지난 10월 금융당국은 계열사 밀어주기 관행을 막기 위해 계열 금융회사 상품을 50%로 이내로만 팔게 하는 방안을 마련해 추진중이다.
이번 방안이 마련된 것은 대기업 등이 계열 보험금이나 운용자금을 계열 금융회사로 몰아줘 불공정거래가 야기되고 시장구조가 왜곡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계열사로의 경제력 집중, 퇴직연금 운용 리스크 증대, 소비자의 선택권 침해 등을 해소하려는 취지다.
실제 업계에선 삼성, 현대차, 롯데그룹 등 상당수 대기업들이 계열 금융회사로 보험금이나 자산운용 자금을 집중시키는 것에 대해 개선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삼성그룹은 10조원이 넘는 퇴직연금 중 50%에 육박하는 자금을 계열금융회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증권에 나눠 맡겼다. 현대차는 계열사인 HMC투자증권과 3조원 이상 집중적으로 계약했고 롯데그룹 4500억원의 퇴직금 중 4200억원을 롯데손보에 몰아줬다.
금융회사들 역시 별반 다를게 없다. 계열사 금융상품을 계열 은행이나 증권사 등이 집중적으로 팔아주면서 금융상품 쏠림현상이 심화돼 왔다. 이에 금융위가 공정한 시장경쟁 환경을 만들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문제는 퇴직연금부문에서 불거졌다. 펀드나 보험상품 등 단일 금융상품이 아닌 퇴직연금시장의 경우 제도적인 특수성을 감안해 접근해야 함에도 금융위가 동일한 잣대와 기준을 들이대고 있다는 것.
이번 금융위의 야심찬 50% 계열사 규제책에 피해를 입게 된 곳은 HMC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롯데손해보험 등 3곳. 모두가 업계내 후발주자들이다.
HMC증권과 롯데손보는 계열사의 퇴직연금 계약고가 전체 운용계약 적립액의 90%를 넘어서 있다. 하이투자증권도 적립액의 85% 가량이 계열사와의 계약으로 이뤄졌다.
때문에 이들은 이번 규제 도입으로 2년내 기존 퇴직연금 계약을 파기하거나, 추가로 비 계열사로들부터 퇴직연금을 적립받지 못하면 사실상 영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 일부 회사들은 이번 규제책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다른 금융회사와의 물물교환 방식(바터)을 통해 계열사 비중을 줄이려는 궁여지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 외의 회사들은 모두 계열사 비중이 50%를 하회, 이번 규제에 대한 반발이 전혀 없다. 특히 삼성생명 등 기존 퇴직연금시장 강자들에겐 도리어 약이 될 수 있다. 삼성생명의 경우 총 7조 5700억원의 계약고 중 계열사 계약분이 3조 8000억원 안팎으로 50% 규제룰을 살짝 피해간 상황이다. 오히려 이번 규제에 직격탄을 맞게 된 금융회사들의 물량을 받을 가능성에 표정관리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후발주자들도 큰 틀에서 계열사 밀어주기에 대한 규제책에는 공감한다. 계열사 밀어주기를 통해 한 기업의 금융자산이 한 금융회사로 집중되는 상황에서 자칫 해당 금융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향후 지급불능 사태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금융자산이 계열사 한 곳으로 쏠리는 현상을 규제해야 한다는 당위론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실제 퇴직금이 파킹되는 자산관리회사는 규제하지 않은채 컨설팅을 하는 운용관리회사에만 50% 룰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선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며 각을 세웠다.
HMC투자증권 관계자는 "계열사인 현대차그룹으로부터 3조원 남짓 운용관리 계약을 따냈지만 실제 퇴직금에 대한 자산관리는 국민은행 외환은행 등 13개 회사로 나눠 운용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했고 운용상의 문제도 없다. 당국이 이를 규제하려면 실제 퇴직금이 운용되는 자산관리쪽도 동시에 규제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경제민주화라는 논리 속에 퇴직연금제도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이번 규제는 결국 '승자독식'의 기조만 부추기는 꼴이 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관계자는 "정작 퇴직연금시장내 수십년 업력을 통해 최강자로 있는 삼성(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은 모든 규제를 피해가고 뒤늦게 시장에 들어온 후발주자들만 덤탱이를 쓴 꼴"이라며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생각해 볼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에 시장 일각에선 50% 규제를 살짝 피해간 삼성생명이 이번 규제책에 대한 개입한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공공연히 나돈다.
◆ "금융위 50% 규제? 논리도 데이터도 없었다"
30도 40도 60도 아니었다. 금융위가 정한 50%라는 규제 비중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금융위 역시 이에 대해 논리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 김정각 자산운용과장은 "비율에 있어 정답은 없다. 30%, 40%, 60% 모두 검토했는데 그나마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선이 50%였다"고 궁색한 답을 내놨다.
50% 비중 방침을 정하기 위해 어떠한 분석 데이터도 구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과장은 되레 "이미 업계 의견수렴 다하고 얘기가 끝난 상황에서 이 문제를 다시 꺼내는 이유가 뭐냐"고 반문했다.
이번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했던 한 업계 인사는 "금융위가 계열사 비중을 50%로 정한데에는 사실 논리가 부족하다 못해 아예 없다고 봐야한다. 그저 절반 수준인 50%가 깔끔하고 보기 좋다는 정도가 이유가 아니었겠냐"고 꼬집었다.
사실 이번 계열사 밀어주기에 대한 규제책과 50% 비중 제한을 맨 처음 제기한 이는 자본시장연구원 송홍선 박사다. 하지만 그 역시 정부의 영향력을 벗어나진 못했음을 시인했다.
송 박사는 "이번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있어 금융위 통계 및 데이터 등을 받아 활용했고, 정부의 정책 취지를 살리고 업계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접점 찾기에 주력했다"며 "다만 이번 사안처럼 직접규제에 대한 글로벌 표준이나 선진국 사례가 전무하다보니 경험치에 근거한 결론을 내게 됐다"고 해명했다.
업계 일각에서도 금융당국의 전문 연구기관(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원 등)을 활용한 정책 합리화가 지나치다는 비판과 함께 연구기관 역시 전문성을 담보로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연구원이 평소 금융당국으로부터 용역을 의뢰받고 함께 일을 해나가는 상황에서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긴 사실상 어렵지 않냐"며 "이번 퇴직연금 계열사 규제 비중을 정하는 데 있어서도 보다 많은 의견수렴 보다는 정부의 입장이 우선시됐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라고 전해왔다.
결국 금융위로선 누군가의 입을 빌려야 했고 이 곳이 자본시장연구원이었다는 얘기다.
특히나 어떠한 분석데이터나 논리도 없이 금융위가 멋대로 50%를 정하고 이 또한 실제 퇴직금이 파킹돼 운용되는 자산관리부문이 아닌 컨설팅을 하는 운용관리부문에만 잣대를 들이대는 모순을 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최근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란이 부상하면서 금융위의 존폐 여부가 도마위에 오르자 금융위가 무리하게 실적 쌓기에 주력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사태가 아니겠냐는 지적도 있다.
자산관리부문과는 달리 퇴직연금 운용관리부문은 고용노동부 소관이란 점에서 금융위가 협의없이 월권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7월 개정돼 공표된 근로자퇴직연금법에 따르면 노사합의에 의해 운용관리기관(간사 회사)을 한 곳을 둬야 하는데 이번 금융위의 규제에 따라 금융회사에 퇴직연금을 맡겨야 하는 기업들은 운용 주관회사를 복수로 늘려야 한다. 기업으로선 퇴직연금사업자를 골라 줘야하는 수수료도 추가로 지불해야 하고 어렵게 해놓은 노사합의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야 하는 등 답답한 점이 한 둘이 아닌 상황.
회원사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금융투자협회도 난처해졌다. 금투협 한 관계자는 "금융위에선 금투협 중심으로 대표이사들의 자율결의를 통해 계열사 비중 50% 규제를 추진하라는데 손해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어느 대표이사가 책임감 갖고 사인을 하겠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더욱이 이번 계열사 몰아주기 규제책이 한 발 더 나아가 신탁과 일임계약에 대해 10%로 제한하라는 것이 당국의 최근 스탠스"라며 "신탁과 일임계약의 경우 고객 입장이 우선인데 이를 무조건 비중으로 제한하면 고객과의 분쟁 소지가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송홍선 박사는 이번 50% 규제책에 대해, "계열사 비중 제한선을 50%로 정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 테스트도 했다. 다만 퇴직연금 계열사 비중이 40~50%내에 분포된 금융회사들이 많다보니 업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단 50% 수준을 정했고 기간을 유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또한 글로벌리 이같은 직접규제 사례나 비슷한 선진국 사례도 없다보니 이론적인 근거와 논리를 찾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다만 정책 취지와 업계 부담을소화시키는 접점이 이 정도 수준이라고 판단했다"고 거듭 해명했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