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은지 기자 = 1998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금맥'이 발견됐습니다. 당시 재개발이 진행되던 마포구 망채산 일대였는데요. 7천 평 가까이 금맥이 있는 걸로 밝혀졌지만 당장 내년에 입주가 예정된 땅이어서 시멘트에 덮여졌고 대신 새로 지은 아파트 이름에 '황금'이 들어갔습니다. 당시 이 아파트 주민들, '금덩이 위에 앉은 사람들'이라고 불렸다는데 말이 씨가 된 걸까요. 마포 '쌍용황금아파트'는 2020년 현재도 최고가를 경신하며 꾸준히 반짝이고 있습니다.
당시 '황금'이 들어간 것만으로도 특이한 이름이었던 쌍용아파트처럼 1990년대 중반까지 아파트 이름은 대부분 지역명이나 시공사가 붙었습니다. 마포에 '마포아파트, 와우산에 '와우아파트'처럼 지역명이 들어갔다가 건설사의 수가 늘어나면서 '삼성, 대우, 현대, LG'같은 기업명이 붙었는데요. 이후에는 한 지역에도 다양한 건설사들이 청약 경쟁을 벌이면서 '삼성 보라매아파트', 'LG 수지아파트'처럼 지역명과 시공사가 모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과잉 경쟁 시대가 오면서 더 새롭고 더 차별적인 '콘셉트 아파트'가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기존 아파트와는 차별되는 독자적인 브랜드 네임이 필요해지면서 초고급 아파트 브랜드가 생기기 시작했죠. 삼성물산의 '타워팰리스', 대우건설의 '트럼프 월드', 현대건설의 '하이페리온', 롯데건설의 '롯데 캐슬' 등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아파트 이름들은 어떨까요. '센트로엘' '플로리체' 등 한 번 듣고는 뜻을 알기도, 발음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예전에는 환경친화적으로 '파크, 리버, 오션, 블루' 같은 말이나 교육 환경을 강조한 '에듀', 대표 단지 최초라는 뜻으로 '리더스, 센트럴, 퍼스트'를 많이 붙였대요. 그러다 요즘은 익숙한 건설사 명보다 좀 생소한 숫자나 단어를 조합한 독특한 이름을 만들고 있는 건데요. '센트로엘'은 중심이라는 뜻의 '센트럴(Central)'과 금빛으로 된 둥근 부분이라는 뜻의 '로엘(Roel)'을 합친 말이고 '플로리체'는 '플로라(꽃)'과 '리치(풍부)'를 합친 말이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풀어서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는 이름들입니다.
최대한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 아주 '긴 이름'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헷갈려서 못 찾아온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되고 있는 건데 금강주택은 남양주 아파트를 '다산신도시 금강펜테리움 리버테라스'로 대방건설은 인천 서구 아파트를 '검단신도시 2차 노블랜드 에듀포레힐'로 붙였습니다. 심지어 '이천 증포3지구 대원 칸타빌 2차 더테라스'는 무려 18자. 지역도, 브랜드도, 단지 특색도 뭐 하나 놓칠 수 없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이름입니다.
잘 지은 아파트 이름 하나가 실제로 청약 성적을, 백 년 시세를 좌지우지한다고 하니 주요 건설사들, 아파트 이름 짓는데 자녀 이름 짓듯 작명소나 철학관에 가지는 못해도 주민들에게 공모를 내걸기도 합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도 '신천역'이 '잠실새내역'으로 바뀐 후에 인근 아파트값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고 하죠. 이름이라는 게 한 번 지으면 계속 불리는 만큼 사람에게도, 아파트에게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촬영/이민경 편집/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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