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이어 SK 그리고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 긴축경영 돌입
1000조 투자 약속 국내 대기업들, '새판짜기' 불가피
[서울=뉴스핌] 정경환 기자 = 이른바 'R'(Recession, 경기 침체)의 우려에 재계가 움츠러들고 있다. 대규모 투자 계획을 보류하거나 재검토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긴축경영에 돌입하는 모습이다. 구글과 아마존, 메타, 테슬라 그리고 애플 등 해외 유명 기업들마저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 국내 기업들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올 하반기 이후 경영전략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SK와 LG의 경우처럼 이미 조치를 취한 기업도 있다. SK하이닉스는 4조3000억 규모 청주공장 증설 계획을 보류했고, LG에너지솔루션은 1조7000억 원을 투자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한 계획을 전면 재검토키로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면서 "올 하반기는 물론이고 내년 이후 전략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날 권오갑 회장 주재로 주요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지난 4월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맞춰 사별 대응책 마련을 주문한 지 석 달 만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 사장단은 국내외 경영상황에 대해 총체적으로 점검, 경기 침체가 현실화될 경우, 각 계열사별 리스크와 그에 따른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공유했다.
국내뿐만 아니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마저 경기 침체 우려에 긴축경영에 들어갔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애플이 내년에 일부 사업 부문의 연구개발(R&D)·채용 예산을 예상보다 적게 책정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통상 매년 5∼10% 가량 인원을 늘려왔던 애플이 내년에는 일부 부서의 인원을 늘리지 않고 직원이 퇴사해도 충원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전언이다. 일부 사업부의 고용과 지출 증가 속도를 줄여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해외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까지 연이어 긴축경영에 나서면서 시장의 긴장감은 확산되고 있다. 애플에 앞서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과 아마존,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 등이 지출·채용 축소 방침을 밝힌 바 있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테슬라는 감원에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글로벌 경영 환경을 감안, 국내 10대 그룹 중 한 곳은 투자를 비롯한 경영전략이 전면 수정될 수도 있다고 봤다.
이 그룹사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투자계획 같은 건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며 "당장 급한 투자 일정이 없는 우리도 이런데, (투자 시기가) 임박한 곳들은 더욱 고민이 클 것"이라고 했다.
앞서 삼성과 SK, 현대차, LG, 한화, 현대중공업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지난 5월 향후 5년간 총 1000조 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같은 재계에서도 너무 비관하긴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경기 체감 수준이 아직은 심각할 정도까진 아니라는 얘기다.
한 그룹사 관계자는 "경기 위축 우려 이런 게 비즈니스하는 입장에선 굉장히 큰 불확실성이고, 경기 하락이 현실화되면 당연히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지금까진 특별히 3분기 실적이 걱정된다고 할 만한 지점은 없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알 거 같은데, (우려가) 현실화될지 예단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겠으나, (적어도 지금은) 피부에 와닿을 만큼 어렵다 싶은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