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피해액 늘어…2021년 사상 최대
제도 개선 요구에도 논의 더뎌…피해 양산
[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 장모 씨는 최근 중고거래플랫폼 '번개장터'에서 애플 아이폰13프로 중고제품이 저렴한 가격에 올라온 걸 발견했다. 장씨는 물건을 택배로 받기로 하고, 판매자 A씨에게 40만원을 입금했다. 사흘 후 택배 상자를 열어본 장씨는 깜짝 놀랐다. 상자 안에는 핸드폰 대신 생리대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장씨는 돈을 돌려달라고 항의했지만, A씨는 제3자의 아이디와 은행계좌를 쓰고 있으니 자신을 추적하기 어려울 것이란 말을 남기고 종적을 감췄다.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한 물품거래가 일상화되면서 이를 악용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중고거래 사기 피해는 하루 평균 228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고거래 사기 피해금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2021년(3606억원·일평균 230건)과 별반 차이없는 수준이다.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지 오래지만, 논의가 더딘 탓에 피해자가 계속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경찰청이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거래 사기 피해는 8만3214건이다. 전년(8만4107건)보다 소폭 줄었으나 매년 피해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5년간 중고거래 사기 신고는 12.4% 늘었다. 특히 충북(41.2%), 강원(35.0%), 충남(26.6%), 경남(19.6%), 전남(19.0%), 대구(18.8%), 전북(18.6%), 울산(13.5%)에서 피해 사례가 늘었다.
피해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8년 278억원이었던 피해 금액은 2021년 3606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피해 규모는 현재 확정되진 않았으나 신고 피해 건수로 유추했을 때 전년도와 대동소이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피해 구제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온라인 중고거래 등 물품사기는 현행법(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 및 피해금환급에 관한 특별법)상 보이스피싱, 스미싱과 같은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전기통신금융사기의 경우 피해자들은 범죄 피해사실을 소명할 필요가 없다. 은행이 범행에 사용된 계좌를 즉지 지급정지하면 피해자들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와 달리 중고거래는 사이버금융사기에 해당되지 않는 탓에 범행에 사용된 계좌가 정지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 경찰이 사건을 접수해 금융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받고, 은행에 계좌 지급정지를 신청하기까지 통상 7~10일이 소요된다.
이 사이 문제가 된 계좌가 범행에 계속 동원될 여지가 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선 이후 추가 범행이 발생해도 사실상 이를 막기 어렵다. 피해자가 피해액을 돌려받는 절차도 복잡하다. 피해자는 사기범이 검거된 후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데, 사기범이 검거되지 않거나 반환불능 상태일 경우 피해액을 돌려받지 못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국내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온라인 사기에 강력히 대응하는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당근마켓 측은 당시 "온라인 사기를 보이스피싱, 스미싱에 준하는 통신사기 범주에 포함해야 한다"며 "피해자 보호 조치가 즉각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중고거래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범행을 적발, 신고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윤희근 경찰청장은 실효성 있는 제안이라며 보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논의는 더디기만 한 실정이다. 중고물품을 재화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유 의원실 관계자는 "중고거래를 비롯한 '재화의 공급을 가장한 행위'는 현행법상 금융통신사기로 인정되지 않는데, 재화의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행법 개정이 쉽지 않다면 중고거래와 관한 특별법을 별도 제정하자는 의견도 있다.
한편 업 발표에 따르면 당근마켓 가입자수는 이달 기준 약 3300만명, 월간 이용자수는 1800만명에 달한다. 중고거래 시장 2위인 번개장터는 지난해 1월 기준 누적 가입자수 1700만명을 넘어섰다.
chojw@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