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중심주의에 따른 반도체 공급망 불안 고려해야
美·中 대규모 공장 투자도 유럽 투자 위험성 요인
[서울=뉴스핌] 이지용 기자 = 유럽연합(EU)이 삼성전자에 역내 반도체 투자를 공격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유럽 투자에 나서면 반도체 공급망 불안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티에리 브르통 EU집행위원회(EC) 내부시장 집행위원이 29일부터 오는 30일까지의 방한 기간 중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면담을 할 전망이다. 브르통 위원은 이 회장에 유럽 역내의 반도체 공장 및 연구·개발(R&D) 시설 설립 등 반도체 관련 투자를 적극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EU의 고위급 인사가 직접 한국을 찾아 반도체 투자를 요구하는 것과 관련해 최근 합의가 이뤄진 EU의 '반도체 지원법'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EU는 반도체법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총 430억유로(60조원)를 투입해 유럽 역내의 전세계 반도체 생산 비중을 기존 9%에서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에 맞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 21일 반도체 투자 유치 등을 놓고 이재용 회장과 개별 면담을 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삼성전자 평택 2라인 전경 [사진=삼성전자] |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지원금을 앞세운 EU의 요구에 호응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 삼성전자가 오히려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반도체가 국가안보 핵심자산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EU가 자국(역내)중심주의의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삼성전자를 끌어들이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세계 3대 반도체 소비시장을 갖추고 있는 EU 또한 미국과 중국처럼 반도체 생태계를 꾸린 뒤 EU에 유리한 반도체 관련 정책을 펼칠 경우 외국기업인 삼성전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 국의 자국중심주의가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제3의 대규모 공급망을 유럽에 구축할 경우, EU의 반도체 정책에 따른 반도체 공급망 생태계 불안이 더 심각해질 우려가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가 이미 중국과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 투자를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유럽 투자는 공급망 불안을 비롯한 투자 위험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의 40%를 하고 있다. 또 앞으로 미국 텍사스주에 20년간 총 1921억달러(약 270조원)를 들여 11개 파운드리 반도체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지난 28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포럼 2023'에서는 오는 2027년까지 미국 테일러시에 반도체 클린룸을 2021년의 7.3배 규모로 대폭 확대 건설하는 계획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거액의 투자비를 들여 중국과 미국에 반도체 공급망을 설치하고 있는 와중에 유럽에 대규모 투자를 다시 추진할 경우 비용 리스크와 부담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또 반도체 최종 수요처인 EU가 이미 인텔과 TSMC 등 외국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확보한 상태에서 삼성전자의 유럽 투자 효과 및 점유율이 적어질 수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목된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세계적으로 자국중심주의가 심각해진 상태에서 무작정 유럽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 삼성의 국내 및 해외 반도체 공급망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럽의 지원 정책이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EU도 미국, 중국 등과 마찬가지로 자국중심주의 전략을 선택한 것"이라며 "삼성은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등 국내 반도체 생태계 투자를 유지한 뒤 균형잡힌 해외 투자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leeiy52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