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회 (이미지21대표, 미래기술문화연구원장)
올림픽 폐막. 다시 심심한 날들로 돌아가는 건가?
아침이면 들려오는 메달 소식과 치열한 경기 영상, 승자의 환한 웃음, 영광을 위해 그들이 흘린 땀과 노력의 시간들에 공감하면서 무더위도 잊고 지냈는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면? 자신도 모르게 올림픽 기간 동안 도파민 샤워를 제대로 한 것이다.
우리는 '도파밍' 시대를 산다. 도파밍은 기쁨이나 흥분, 쾌락을 경험하면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과 게임에서 가열차게 아이템을 모으는 '파밍(farming)'의 합성어로 계속해서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찾는 사회현상을 말한다. 요즘 사람들, 도파민 뿜뿜 솟는 신나는 경험에 진심이란 뜻이지만 사실 '도파밍'은 '도파민 중독'의 다른 말일 뿐이다.
하민회 이미지21 대표. |
도파민은 쾌감과 보상을 느끼게 하는 뇌 호르몬으로 적당히 분비되면 사람에게 활력을 주고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일상적인 수준을 넘어 지속적으로 과도하게 분비되면 보상체계가 손상되고 역치가 올라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점점 더 큰 자극을 추구하는 중독상태가 된다. 일반적으로 중독상태는 조절이 안되고 일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능한 자주, 더 센 자극을 원하는 도파밍의 대표적인 사례는 숏폼이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을 통해 빠르고 강력한 쾌감을 얻을 수 있는 만큼 중독성이 커서 '디지털 마약'으로 불리기도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숏폼 이용자 23%는 '숏폼 시청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고 청소년에서는 이 비율이 37%까지 올라갔다.
한 데이터 분석에 의하면 지난해 8월 숏폼의 월평균 시청 시간은 46시간 29분으로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 등 OTT 플랫폼의 월평균 시청시간 9시간 14분에 비해 5배나 길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선수단 결단식을 마치고 남자펜싱 사브르 대표팀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받은 응원 편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남자펜싱 사브르 대표팀 오상욱, 구본길, 원우영 코치, 박상원, 도경동. [사진=문화체육관광부] 2024.07.10 jyyang@newspim.com |
잠들기 전에 십 분 만 봐 야지 하고 시작하지만 정신차려보면 2~3시간 훌쩍 지나 있다. 새로운 영상이 끝없이 재생되는 무한 스크롤로 설계된 숏폼 플랫폼은 시간을 순삭시킨다. 영상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사용자는 자의식과 신체감각이 사라지며 기기와 하나가 된 듯한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카지노의 슬롯머신처럼 다음에 어떤 영상이 나올지 예측 불가한 점도 숏폼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운 한 요인이다. 행동심리학자 스키너의 쥐 보상실험에 의하면 상자 안의 굶주린 쥐는 동일한 먹거리가 나왔을 때보다 아예 안 나오거나 많이 나오거나 다른 먹거리가 나오는 등 매번 결과가 다를 때 훨씬 더 흥분했다. 쾌락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무작위 보상 때 훨씬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 떠서 잠들기 전까지 손가락만 움직이면 세상의 모든 자극이 무작위로 눈앞에 펼쳐진다. 영국의 연구에 의하면 한 달 동안 스마트폰 화면을 움직이는 스크롤 이동을 거리로 환산해보니 1인당 평균 396m, 에펠 탑(330m)보다 높았다.
미디어를 통한 도파민 중독은 알코올 중독과 유사하다. 즉각적 쾌락과 이완감을 제공하지만 내성과 금단현상이 수반된다. 처음에는 적은 양으로도 만족감을 느끼지만, 점차 더 많은 양을 필요로 하게 되고 미디어를 사용하지 못하면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이는 학업이나 직장에서의 집중력 저하로 이어지고 일상 생활에 불안감, 우울감 같은 부정적 정서를 초래한다.
[파리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김우진(오른쪽)과 임시현이 2일 양궁 혼성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뒤 손가락 2개를 들어 대회 2관왕에 올랐음을 표현하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4.08.03 zangpabo@newspim.com |
도파밍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렇게 중독 알고리즘에 꼼짝없이 당하고 있지만 관련 시장은 지속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삶의 우선순위가 노동과 수입에서 재미, 즐거움, 행복 같은 개인적인 만족감으로 변화하고 있어서 이다.
다행히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도파밍'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인지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도파민 디톡스','도파민 단식'이 유행이다. 주로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고 온전히 심신의 휴식을 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숲 체험, 템플스테이, 명상 활동 등을 취미삼아 틈 나는 데로 도파민 정상화에 노력을 기울이는가 하면 '취침 시 스마트폰은 거실에 둘 것', '대화 시 전자기기는 가방 안에 둘 것' 처럼 나름의 규칙을 세워 과도한 도파민 자극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최근에는 20,30대를 중심으로 '도파민 피킹(Picking)'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도파민 피킹이란 무조건 도파밍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도파밍과 반(反)도파밍을 선택하는 소비 행태다.
'도파민 피커'는 도파밍의 순간을 직접 '픽'한다. 숏폼, 달고 자극적인 음식 같은 도파민 터지는 소비를 하다 가도 어느 순간 이를 멀리할 줄 안다. 평소엔 유튜브, 숏폼을 보지만 주말만큼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독서를 한다 거나 '디지털 디톡스 앱'을 다운 받아 시간을 정해두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식이다. NHN데이터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디지털 디톡스 앱의 설치는 1분기 대비 64%나 많아졌다.
[파리 로이터=뉴스핌] 박상욱기자 = 12일(한국시간) 프랑스 생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폐회식에서 오륜의 형상이 완성되며 불꽃이 터지고 있다. 2024.8.12 psoq1337@newspim.com |
한 마디로 도파밍 프레임에 끌려가지 않고 도파민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주체적으로 조절하고 활용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파밍은 그저 하나의 트렌드로 보기엔 염려스럽고 위험하다.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일시적인 쾌락뿐 아니라 장기적인 만족감과 학습과 기억, 운동 기능 조절에 관여한다. 도파민이 적절하게 분비되어야 기쁨을 느끼고 동기부여를 받아 목표를 성취해 나갈 수 있다.
더 자주 더 센 자극을 추구하는 요즘 무엇보다 중요시해야 할 일은 도파민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운동을 포함한 신체 활동과 타인과의 교류 활동을 꾸준히 하면 된다. 운동은 도파민 외에도 세로토닌 등을 생성을 증가시켜 기분 전환을 유도하고 근육 세포가 수축하면서 나오는 화학 신호는 뇌의 인지능력을 개선해 준다.
돌이켜보니 올림픽 경기 응원에 현실의 대소사를 잠시 내려놓았던 것 같다. 이기든 지든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경험을 나누는 기분 좋은 흥분. 도파밍 시대 올림픽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사라지고 있는 느리고 온전한 행복의 맛을 알려준다.
◇하민회 이미지21대표(미래기술문화연구원장) =△경영 컨설턴트, AI전략전문가△ ㈜이미지21대표, 코가로보틱스 마케팅자문△경영학 박사 (HRD)△서울과학종합대학원 인공지능전략 석사△핀란드 ALTO 대학 MBA △상명대예술경영대학원 비주얼 저널리즘 석사 △한국외대 및 교육대학원 졸업 △경제지 및 전문지 칼럼니스트 △SERI CEO 이미지리더십 패널 △KBS, TBS, OBS, CBS 등 방송 패널 △YouTube <책사이> 진행 중 △저서: 쏘셜력 날개를 달다 (2016), 위미니지먼트로 경쟁하라(2008), 이미지리더십(2005), 포토에세이 바라나시 (2007)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