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향방 일드커브를 보라
연준과 주요국 중앙은행 '엇박자'
채권시장 교과서 논리 안 통해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재점화된 '연준 풋'이 7조6000억달러의 증시 주변 자금을 움직일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살' 속에 이뤄진 연방준비제도(Fed)의 25bp(1bp=0.01%포인트) 금리 인하에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가 혼조 양상을 보였지만 월가는 자산시장의 훈풍을 기대하는 표정이다.
사실 이번 금리 인하는 이미 예고된 결정이지만 연말까지 두 차례 추가 인하를 예고한 대목이 고무적이라는 판단이다.
미국 경제 매체 CNBC와 시장 조사 업체 크레인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머니마켓펀드(MMF)에 예치된 자금이 7조600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사상 최고치에 해당한다.
고용시장 적신호 속에 9월17일(현지시각) 단행된 연준의 금리 인하가 통화정책 기조의 추세적인 변화를 예고한다고 볼 때 '현금 장벽(wall of cash)'이 자산시장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기대가 번지고 있다.
◆ 방어주 VS 성장주 '2년물 금리를 보라' = 연준의 금리 인하 사이클을 겨냥해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새 판 짜기를 고민하는 가운데 씨티그룹은 보고서를 내고 2년물 국채 수익률을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경기 부양적인 세제 개편과 완만한 성장 속에 연준이 2026년까지 최대 1.5%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강행, 주식시장의 상승 흐름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한다.
![]() |
미국 달러화 지폐 [사진=블룸버그] |
씨티그룹은 우선, 이번 금리 인하가 주식시장에 균일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하가 단기적으로 경기 약화 신호라는 것. 또 거시경제 향방과 맞물려 연준의 결정이 투자자들에게 상이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얘기다.
큰 틀에서 완만하지만 지속적인 경기 팽창이 예상되며, 이 같은 거시경제 여건을 동반한 연준의 금리 경로는 성장주 비중 확대를 뒷받침한다고 씨티그룹은 주장한다. 주가 상승 모멘텀이 성장주에 집중될 여지가 높다는 얘기다.
성장주 가운데서도 선택의 폭이 넓은데 이 때부터 길잡이는 일드커브라는 것이 씨티그룹의 의견이다.
정책 금리에 가장 민감한 2년물 국채 수익률이 미국 벤치마트 10년물 수익률보다 가파르게 하락, 이른바 일드커브 스티프닝이 전개되는 상황에 연준의 금리 인하는 IT와 부동산, 임의 소비재에 호재로 작용하는 반면 통신서비스와 에너지, 헬스케어의 경우 상반되는 영향을 미쳤다는 것.
성장 전망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이와 다른 결과가 전개된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연준이 실물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이는 2년물 국채 수익률을 더 큰 폭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전개되면 방어주가 아웃퍼폼할 여지가 높다고 씨티그룹은 전했다. 부동산과 유틸리티, 필수 소비재 등이 아웃퍼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핵심은 연준의 다음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대응이 거시경제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실물경기 여건이 우호적일수록 경기순환주나 롱듀레이션 위험 자산이 매력적이라는 설명이다.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976년 이후 연준이 금리를 2회 이하로 인하했을 때 경기순환주가 방어주를 앞질렀고, 4회 이상 인하 사이클에서는 방어주가 아웃퍼폼 했다.
경기가 급속하게 악화될 때 연준의 금리 인하폭이 커지고, 이 때 투자자들 역시 유틸리티와 필수 소비재, 헬스케어 등 방어주 섹터로 몰리는 이치다.
미국 경제가 침체를 모면한다고 보면 성장주와 경기순환주가 주도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는 주장한다.
섹터별로, 밸류에이션이 가파르게 뛴 기술주에 비해 저평가 매력과 함께 일드커브 스티프닝에 순풍을 탈 여지가 높은 은행주가 매력적이라는 판단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소형주에 관심을 높일 것을 권고한다. 일반적으로 무거운 부채 부담을 지고 변동 금리로 차입하는 소형주들이 금리 하락에 반사이익을 본다는 설명이다.
역사적으로 소형주는 낮은 밸류에이션에 거래되지 않지만 최근 선행 주가수익률(PER) 16배는 대형주에 비해 충분히 저렴한 상태라고 은행은 강조했다.
◆ 글로벌 마켓 향방은 = 연준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을 놓고 시장 전문가들은 간단치 않다는 데 입을 모은다.
![]() |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사진=블룸버그] |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연준이 인하 사이클에 돌입, 세계 중앙은행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과 캐나다 중앙은행은 이번 인하 사이클에 각각 200bp와 225bp의 금리 인하를 강행했다. 금리 선물 시장은 2026년 말까지 연준이 기준금리를 150bp 인하하는 시나리오를 점치는데 이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큰 폭이다.
트레이더들은 같은 기간 영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금리를 각각 40~60bp씩 내릴 것으로 예상하는 한편 ECB와 스위스 중앙은행은 인하를 마친 것으로 판단한다.
이 같은 정책 엇박자에 따른 파장은 외환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달러화 약세 기조 속에 원치 않는 자국 통화 강세가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고민을 가중시키는 모양새다.
ECB 정책자들은 근원 인플레이션이 이미 목표치 2%를 하회, 2027년 1.8%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연초 이후 유로화는 달러화에 15% 급등, 2023년 이후 최대 연간 상승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통화 강세와 관세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더욱 억제될 경우 ECB가 금리 인하를 다시 저울질 할 수도 있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경제 지표를 근거로 현재 실질금리가 중립금리 아래에 위치한 것으로 판단한다.
복잡한 매커니즘과 무관하게 주식 전략가들은 유럽과 일본부터 이머징마켓까지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다.
씨티그룹은 글로벌 주식에 대해 '최대 매수' 포지션을 취하고 있으며, 특히 유럽 주식의 비중을 확대했다고 전했다.
엑세인 증권은 보고서에서 "글로벌 주식시장이 '열광'으로 절정에 달할 수 있는 상승 추세의 초기 단계"라며 유럽과 일본 주식에 대한 비중 확대를 추천했다.
숨은 리스크가 없지 않다. 연준이 시장의 예상만큼 공격적인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을 경우 달러화가 급등하면서 글로벌 금융 여건이 긴축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과 주요국 증시 전반에 '전술적 조정'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 채권시장의 딜레마 = 월가는 연준의 금리 인하가 국채부터 모기지 금리까지 떨어뜨려 줄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새다.
블룸버그는 이와 관련, 크게 실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 수준의 장기 채권 수익률과 모기지 금리가 앞으로 몇 달 사이 최저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연준이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대로 앞으로 수 차례 추가 금리 인하를 강행할 여지가 있지만 채권시장은 정치적 잡음과 씨름해야 한다고 블룸버그는 강조한다.
연준이 2024년 금리 인하를 시작했을 때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급등했는데 여기에는 국제 유가 움직임과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 등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세금 감면과 관세 등 그가 공약하는 정책 기조가 국채 수익률을 움직인 것.
일부에서는 연준의 잘못된 금리 인하로 인해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상승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수익률이 상승한 것으로 풀이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연준이 국채 수익률 곡선의 장기 부분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영향력만 행사했다는 점이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블룸버그는 판단한다.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고용시장의 양면적인 리스크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인플레이션 전망은 지난해 9월에 비해 악화됐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가 하락하면 단기물을 중심으로 채권 가격이 상승 모멘텀을 받지만 현 상황에서는 교과서적인 논리로 채권시장에 대응해 수익률을 내기 어렵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