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점포 폐쇄 막는 가이드라인 연말 제정
은행권, 연말까지 80여개 점포 통폐합 추진
[서울=뉴스핌] 김진호 기자 = 금융당국의 제동에 잠시 주춤했던 시중은행들의 점포 폐쇄가 최근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당국의 점포 폐쇄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기 전 '닫아야 할 곳은 반드시 닫겠다'는 것이 은행의 전략이다. 반면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외면하는 처사인 은행의 점포 폐쇄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 사옥 [사진=각 사] |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올 연말까지 약 80여개의 점포를 통폐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15년 말 7500여개에 달했던 국내 은행의 점포 수는 올해 연말이 되면 6500여개로 불과 5년 만에 1000여개 이상 줄어든다.
당초 주요 시중은행은 올해 하반기 대규모 점포 폐쇄를 계획했지만 금융당국의 잇따른 '경고'에 이른바 속도 조절에 나서왔다. 그러나 점포 폐쇄를 어렵게 하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올 연말 마련될 것으로 알려지며 당초 계획했던 점포 폐쇄를 강행하기로 했다.
비대면·언택트 금융환경이 일상화된 가운데 점포 폐쇄는 이제 거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는 것이 은행의 논리다. 초저금리 기조 속 악화되는 수익성을 감안할 때 역시 점포 폐쇄는 비용절감·효율성 면에서 꼭 필요한 점도 이유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점포 폐쇄는 은행의 자율적 권리인데 이를 강제하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며 "가이드라인이 제정되면 폐쇄가 어려워지는 만큼 은행 전략상 꼭 통폐합해야 하는 점포를 연내 처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반면 금융감독은 은행권이 가파른 점포 폐쇄 속도를 우려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급격한 점포 수 감축이 결국 고령층 등 취약계층의 은행 이용에 큰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감독기구인 금융감독원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두 차례나 "점포 수를 급격하게 감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은행 스스로 고객 금융서비스 이용에 불편이 초래하지 않도록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자제를 권고한 바 있다.
금감원은 현재 은행권 자율규제인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가이드라인'을 올해 말 개정할 방침이다. 은행이 점포를 폐쇄할 경우 외부 전문가가 참여해야 하고 영업점 폐쇄 3달 전 소비자에게 이를 알리도록 하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다만 해당 가이드라인의 경우 민간 금융사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대면 고객 숫자가 날로 갈수록 급감하는 상황에 예전과 같은 숫자의 점포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금융당국의 탁상공론적 행정이라는 비판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점포 폐쇄를 은행의 생존 전략으로 인정하되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적정 수준의 점포를 유지하는 절충안을 은행권과 금융당국이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은행의 점포망 축소와 그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은 저성장·저금리 장기화와 시대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은행의 생존전략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다만 취약계층 밀집 지역 등에서 점포를 닫을 경우 프로 스포츠팀에서 신인선수를 선발하는 방식인 드래프트 제도처럼 은행권이 점포를 폐쇄할 지역을 순차적으로 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rpl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