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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비트코인① 한국 화폐 붕괴의 역사

기사입력 : 2023년09월11일 17:03

최종수정 : 2023년09월11일 17:03

6.25 전쟁과 제1차 긴급 통화조치
전쟁으로 폐허 된 한국, 제2차 긴급 통화조치
박정희 의장(대통령)의 제3차 긴급 통화조치
한반도 통일되면 원화 가치는 대 폭락? 왜?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한국 영화에서는 가끔 개인 금고에 5만원권 화폐를 가득 넣어 보관하는 장면이 나온다. 재테크 측면에서 보면 이런 보관 방식은 당연히 최악이다. 합법화할 수 없는 검은 돈이나 탈세 목적이 아니라면 은행에 입금해 3%의 이자라도 받는 게 정상적인 화폐의 보관 방법이다.

그런데 화폐는 과연 영원한 걸까?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쓴다. 일본은 엔화, 유럽은 유로화, 중국은 위안화를 쓴다. 한국은 당연히 원화를 쓴다. 흥미로운 건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영원한 화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한국 화폐의 붕괴 역사를 살펴보자.

◆ 6.25 전쟁과 제1차 긴급 통화조치

한국은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역사적으로 주변국가들의 침략을 받는 일이 흔했다. 너무 먼 과거로의 역사여행은 자제하고 가까이에 있는 1900년도부터의 역사를 살펴보자. 1900년도 초반까지 조선에서는 상평통보가 화폐로 통용됐다.

그런데 1910년에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조선왕조)이 망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35년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했다. 이 시기에는 일본제일은행에서 발행된 '엔'과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 엔'이 화폐로 통용됐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우리나라는 해방됐다. 문제는 일본정부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 지던 1945년 8월의 패망 직전에 도쿄에서 황급히 돈을 엄청나게 찍어내 한국으로 공수해 온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발행된 화폐로 인해 한국의 총 화폐 유통량은 1개월만에 기존의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화폐의 유통량이 2배로 늘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화폐가치는 폭락하고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렇게 급조해 발행된 화폐들은 일본인들의 본국 귀향 자금으로 활용됐다. 또 친일 반민족행위자들과 한국에 있던 일본인 단체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살포됐다.

그 결과 한국 내의 물가폭등으로 이어져 몇 달 사이에 생활물가는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 당시의 물가폭등으로 인해 한국의 수많은 서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 때 만약 화폐 대신 금을 가지고 있었다면 화폐가치 하락의 상당 부분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광복 이후 한국경제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는 조선은행권이 '원(圓)'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통용됐다. 이런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5년이 지난 1950년 6월 25일에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한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시작됐다.

개전 3일만에 서울에 진입한 북한군은 한국은행 본점을 점령한 뒤 지하금고에서 미 발행 조선은행권 '원(圓)'을 대량으로 발견한다. 북한군은 남한경제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이 화폐들을 불법으로 마구 발행해 버린다. 이로 인해 화폐가치는 다시 한번 급락했다.

그래서 이 당시 조선은행권을 가지고 있던 평범한 국민들은 본인들이 보유한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걸 다시 한번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물론 전쟁 중에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쟁 상황에서 위조지폐까지 유통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적군인 북한군이 불법으로 제조한 화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정부는 1950년 8월 28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조선은행권 교환 및 유통에 관한 건"을 공포했다. 이는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새로 발행한 '한국은행권'과 1대1로 교환하도록 하고 조선은행권의 유통을 정지시키는 '제1차 긴급통화조치'였다.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새로운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하려면 필수적으로 신분확인이 필요하니 불법으로 조선은행권을 손에 넣은 북한군은 한국은행권으로의 교환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보통 화폐 개혁을 할 때는 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절하)를 같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1차 화폐 개혁때는 1대1의 비율로 단순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 전쟁으로 폐허 된 한국의 제2차 긴급 통화 조치

이후 3년간의 기나긴 전쟁으로 경제는 폐허가 됐다. 한국정부는 막대한 군사비 조달과 파괴된 생산시설 복구비용으로 통화를 대량 남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화폐가치는 폭락했고 심각한 물가상승 압력에 시달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53년 2월 15일에 '제2차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하고 기존의 대한민국 화폐였던 '원(圓)'을 '환(圜)'으로 변경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앞의 '제1차 긴급통화조치'와 달랐던 부분은 교환비율이 1대1이 아니라 화폐 액면 단위를 100분의 1로 낮춘 '화폐 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였다는 점이다. 쉽게 설명하면 화폐단위를 '100원(圓)'에서 '1환(圜)'으로 변경해 화폐명칭도 바뀌었고 화폐 교환비율도 100대1이 됐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국가의 화폐가 어려움에 처하면 예외 없이 화폐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가 진행됐다. 6.25 전쟁 시절의 한국뿐 아니라 1차대전에서 패망한 독일,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까지 예외 없이 화폐단위 절하를 단행했다. 도대체 왜 '화폐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를 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일부 은행예금을 동결해 정부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국정부는 '화폐개혁'과 동시에 은행예금도 일정 금액을 강제로 동결시켰다. 기존예금은 10만환(圜) 이상, 긴급통화조치로 예입된 구권예금은 3만환(圜) 이상을 대상으로 20~100%의 체증율을 곱해 특별 정기예금과 국채예금으로 전환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통화증가 요인이었던 '유엔군 대여금'의 상환을 진행했다. 결국 통화량 급증을 억제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저지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 밖에도 큰 폭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 표기의 숫자가 커짐에 따라 발생하는 경제적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화폐단위를 절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요금이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1,000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됐다고 가정해 보자. 옛날처럼 현금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면 100만원의 지하철요금을 현금으로 직접 지불하는 건 매우 불편할 것이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발생하는 계산과 지불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액권을 발행하거나 아예 '화폐 단위 절하'를 단행하는 경우도 많다.

◆ 박정희 의장(대통령)의 제3차 긴급 통화 조치

우리가 만약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장롱을 뒤진 결과 한국 화폐 다발이 무더기로 나왔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그런데 그 화폐의 발행일이 만약 1960년이라면 그 화폐는 지금 시대에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정답은 사용할 수 없다.

한국에서 지금 사용되고 있는 '원(WON)' 화폐는 1962년 6월 10일부터 도입된 화폐다. 그래서 그 이전에 발행된 화폐는 한국은행에서 교환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런 화폐라면 화폐 수집상에게 팔아버리는 게 100배는 더 이득이니까 말이다.

한국 국민들이 정부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건 해방상황도 아니고 전쟁상황도 아니었다. 긴급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정부의 긴급조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평온했던 시기의 난데없는 '화폐개혁'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은 1961년 5월 16일에 박정희 의장(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군사정부가 집권했다. 이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산, 투자, 소비 등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예금 이탈이 진행됐다. 그리고 1년 뒤인 1962년. 침체된 경제활동 때문에 안정적인 정권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재정적자와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계속 심각해지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6월 9일 밤 10시에 '제3차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했다. 박 의장은 부정축재와 음성적으로 축적된 자금의 투기화를 막고, 악성 인플레를 방지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게 바로 1962년 6월 10일의 '제3차 긴급통화조치'다.

 화폐 개혁의 핵심은 '환(圜)'에서 '원'으로 단위를 바꾸고, 10대 1의 비율로 절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구당 교환할 수 있는 돈이 최대 5,000환(圜)에 불과했다. 원화로는 500원이다. 그 이상의 돈은 은행에 의무적으로 저금한 뒤 6개월에서 1년 후에 찾을 수 있었다. 또는 산업개발공사의 주식(연 15% 배당 보장)으로 바꿔야 했다.

그런데 구권을 신권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은 발표 이후 고작 7일에 불과했다. 전 국민이 7일안에 이 모든 걸 처리하는 게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개인의 사유재산을 상당히 침해하는 억압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 당시는 전쟁상황이 아니라 평시 상황이었다.

이 발표로 경제 현장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바로 월요일 새벽부터 은행에는 화폐를 교환하기 위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고, 일선 상점에서는 '구 화폐'를 받지 않거나 물건가격을 크게 올렸다. 아예 문을 닫은 상점도 많았다. 한국경제는 더욱 더 침체됐다.

그런데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왜 기습적으로 '화폐개혁'을 진행하며 무리수를 둔 걸까? 화폐개혁을 하면 부정하게 재산을 모은 사람들과 중국 화교들이 엄청난 규모로 숨겨둔 돈을 '신 화폐'로 바꾸려 할 것이고 이 때 강제로 예금으로 묶어서 국가의 부족한 재정적자를 메우고 산업자금으로도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1962년의 통화개혁은 한국은행 총재 등 관계 당국자와의 사전협의도 없이 극비리에 진행됐다. 신은행권은 정부가 영국의 '토마스 데라루'사에 비밀리에 발주해 제조했고 6월 9일 중앙정보부와 군의 도움을 받아 한국은행 본지점으로 현송됐다. 실무작업을 주도했던 공무원들은 비밀유지 각서를 쓰고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진행된 '통화개혁'의 기존 '환(圜)화' 회수내역을 보면, 100만 환(신화 10만 원) 이하의 소액이 90.5%를 차지했고 1억 환(신화 1천만 원)을 초과하는 예입은 총7건으로 12억 환에 불과해 당초 정부의 예상과 달리 여유자금의 현금 보관규모는 미미했다. 결과적으로 부정축재를 통해 숨겨진 돈의 규모는 많지 않았던 셈이다.

또 중국 화교들의 경우 이미 중국 정부에게 몇 번의 뒤통수를 맞은 경험들이 있어서 기본적으로 금을 선호해 왔다. 이런 이유로 중국 화교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화폐 대신 '금'으로 바꿔서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군사정권의 원대한 포부와 달리 화폐개혁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화폐개혁으로 인한 경제 현장의 극심한 대혼란과 미국의 우려까지 전달돼 군사정권의 예금봉쇄 정책은 지속되지 못했다. 결국 1개월 뒤인 7월 13일에 봉쇄예금 동결을 해제했다. 이로써 기습적인 통화개혁은 지하자금의 산업자금화, 인플레이션 방지 등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부작용만 남긴 채 초라하게 끝났다.

1962년의 화폐개혁 이후에 한국 국민들은 현금자산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15% 이자율(현재 시점에선 고금리지만 그 당시는 물가상승률이 매우 높았다)의 은행예금을 기피하고 토지와 주택 구입 등 실물자산 투자로 돌아섰다. 한국 국민들의 부동산 사랑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화폐는 안전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국가의 필요나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화폐개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종잇장처럼 화폐가 사라질 수도 있다. 아무리 군사정권 시절이라지만 7일안에 화폐를 신권으로 바꾸지 않으면 휴지가 돼 버리는 정책은 공포스럽다.

물론 정부가 화폐를 강제로 뺏지는 않는다. 그런데 보통 화폐개혁을 할 때는 '구 화폐'를 '신 화폐'로만 바꿔주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다. 1명이 교환할 수 있는 돈에 상한선을 두고 그 이상의 돈은 은행에 강제적으로 예금시켜 버린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개인 재산권 행사에 굉장한 침해를 받게 된다.

1962년의 화폐개혁으로 변경된 화폐 '원'이 지금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는 바로 그 '원화'다. 화폐개혁 이전인 예전의 원[圓]과 구별하기 위해 지금의 '원'은 한글로만 표기하고 영문 표기는 'WON'이다. 한국 화폐 '원(WON)'의 역사는 고작 60년에 불과하다.

◆ 한반도가 평화통일 될 경우 한국 화폐 '원'의 가치는?

이제 오래 전 우리의 소원대로 한반도가 평화통일 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미래에 북한과 남한이 평화적으로 통일될 확률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글로벌시장에서 유명한 투자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짐 로저스'는 2013년에 국제시장에서 북한화폐를 대거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짐 로저스'는 왜 북한화폐에 투자했을까? 만약 남북통일이 될 경우 한국이 충분히 보상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짐 로저스의 투자를 이해하려면 동독과 서독의 통일 사례를 살펴보면 된다. 1990년 독일의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은 각자가 발행한 마르크(mark) 화폐를 썼지만 교환비율은 달랐다. 국가재정이 취약했던 동독의 화폐는 암시장에서 서독화폐의 4분의 1에 교환되고 있었다.

하지만 서독의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는 서독 사람들이 희생하더라도 동독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통일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동독과 서독 마르크의 교환비율을 1대1로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동독사람들은 엄청난 이득을 봤다. 추가로 발 빠르게 암시장에서 동독 화폐를 대거 매입했던 서독 투자자들도 4배의 이익을 얻게 됐다. '짐 로저스'가 노리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 화폐의 상황은 어떨까? 북한은 2009년에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전격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화폐개혁 이후인 2023년 현재 기준으로 '북한 원'의 환율은 1달러당 약 8,000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원∙달러 환율 1,300원과 비교하면 화폐가치가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짐 로저스'는 혹시 평화통일이 되면 한국이 독일처럼 화폐 교환비율을 1대1이나 1대2로 너그럽게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굳이 가능성을 따져보면 한반도의 평화통일보다 북한이 한 번 더 화폐 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여전히 심각하게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이 다시 한번 화폐개혁을 진행하면 구권을 가지고 있는 '짐 로저스'는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짐 로저스의 명성은 세계적이지만 그가 과연 '북한 화폐'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확률은 희박하지만 먼 미래에 남북 통일이 됐을 때 한국 정부가 과거 독일처럼 북한과의 화폐 교환비율을 너그럽게 가져가는 결정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원화를 보유한 한국 국민들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일부자산은 원화보다 달러로 보유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미래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 과거 6.25 전쟁을 겪었던 한국뿐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던 독일, 최근의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까지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의 화폐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 달러는 기축통화이긴 하지만 그 역시 신용화폐이자 종이화폐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화폐붕괴의 보험성격인 '금'이나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기도 하다.

 

②편에서 계속… 비트코인② 독일 화폐 붕괴의 역사…나락 간 베네수엘라 화폐

 

자세한 내용은 해당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자.

뉴스핌 (촬영 : 조현아 / 편집 : 문소희)

longinu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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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오픈AI'와 전략적 제휴 [서울=뉴스핌] 양태훈 기자 = 카카오가 오픈AI와 국내 기업 최초로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카카오톡과 AI 에이전트 '카나나' 등 주요 서비스에 챗GPT 기술을 접목하는 등 한국형 AI 서비스 대중화에 나선다. 4일 카카오는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AI 기술을 통한 새로운 서비스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이용자 중심의 AI 서비스 대중화 청사진을 공개했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키노트를 통해 AI가 가져올 일상의 혁신적 변화를 제시했다. 그는 "카카오는 모든 관계가 무제한으로 확장되는 가운데, 나만의 맞춤형 초개인화 일상이 존재하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며 "지인과 비지인의 경계를 넘어 AI 에이전트로 관계가 확장되고, 쇼핑이나 메시지 등을 개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넘어 나에게 적합한 초개인화된 기술이 복합적으로 수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정신아 카카오 대표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카카오 미디어데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02.04 mironj19@newspim.com 이어 "모바일 시대 카카오는 메시지, 커머스, 모빌리티, 엔터테인먼트, 금융 등 일상에서 국내 최고 플랫폼 회사로 시대의 기술을 쉽게 쓸 수 있도록 제시했다"면서 "AI 시대에도 이 가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카카오의 핵심 가치를 강조했다. 나아가 "사용자에게 집중해 의미 있는 가치를 창출하고, 사용자가 가장 쉽게 AI를 활용하고 일상이 편리하게 하는 것이 카카오가 제공할 핵심적 가치"라며 "이를 위해 카카오는 AI 기술이 일상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경쟁력 있는 기술과 서비스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는 이러한 비전 실현을 위해 'AI 모델 오케스트레이션' 전략을 핵심으로 내세웠다. 정 대표는 "카카오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단순 서비스 제공에 그치지 않고 카카오 전체 생태계를 활용해 사용자 맥락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서비스별 특성에 맞는 최적의 AI 모델을 선별적으로 활용하고, 때로는 여러 모델을 복합적으로 조합해 최상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카카오 미디어데이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5.02.04 choipix16@newspim.com 또 "사용자들이 각각의 AI 모델 특성을 일일이 파악하고 선택할 필요 없이,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자동으로 최적의 결과를 받아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면서 "이는 카카오가 가진 플랫폼 역량과 AI 기술의 결합이 만들어낸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카카오는 AI 에이전트 '카나나(Kanana)'를 통해 이러한 전략을 가장 먼저 구현할 계획이다. 카나나는 일대일 대화뿐 아니라 그룹대화에서도 맥락을 이해하고 적절한 답변을 제시하는 등 이용자의 관계 형성과 강화를 돕는 서비스로, 카카오는 자체 언어모델과 오픈AI의 최신 기술을 결합해 한국 이용자들에게 최적화된 AI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정 대표는 "기술적으로는 한국에서 한국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는 카나나 모델을 자체 개발 중이고 파인튜닝을 통해 고도화하고 있다"면서 "개발자들이 모델을 활용하기 쉽도록 카카오 AI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에 AI 기술이 쉽게 적용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카카오 미디어데이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5.02.04 choipix16@newspim.com 또한 "모든 사용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자체 세이프가드를 개발해 악의적 인용이나 편향성 이슈가 없도록 AI 윤리 원칙을 작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이날 카카오와의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샘 올트먼 CEO는 "카카오는 기술이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이용자들에게 혁신적인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왔다"면서 "카카오의 수많은 이용자들에게 첨단 AI를 제공하고, 이 기술을 카카오의 서비스에 통합해 이용자들의 소통과 연결 방식을 혁신하는 데 협력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샘 올트먼 CEO는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며 협력의 구체적인 방향성도 제시했다. 그는 "한국은 에너지, 반도체, 인터넷 기업 등 강력한 AI 도입 기반을 갖춘 시장으로, AI 채택률이 놀라운 수준으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카카오와 AI, 메시징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어 함께 탐구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많다"면서 "생산성과 엔터테인먼트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정신아 카카오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카카오 미디어데이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2025.02.04 mironj19@newspim.com AI 기술 발전과 관련해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모델로 진전을 이루고 있으며, 작년과 비교해 운영 비용이 10배 가량 감소했다"면서 "6개월 전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이제는 가능해졌으며, GPT를 통해 수개월 걸리던 작업이 훨씬 더 빨라졌다. AI 역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비용은 지속적으로 절감되고 있어, 머지않아 GPT4가 모바일에서도 구현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AI 안전성에 대해서는 "AI 안전성은 나중에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개발 단계부터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로, 특히 AI 에이전트 개발에서는 안전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컴퓨터를 실제 제어할 수 있는 에이전트에서 안전은 추상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다"라며 "안전과 공동 프로덕트 개발은 같은 선상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카카오와 오픈AI는 지난해 9월부터 기술과 서비스, 사업 등 다양한 범위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해왔다. 카카오는 이번 협력을 통해 5000만 카카오톡 이용자를 위한 다양한 AI 서비스를 준비 중이며, 향후 한국 시장에 특화된 공동 상품도 개발할 예정이다. 오픈AI와 챗GPT 로고. [사진=뉴스핌DB] 정신아 대표는 "이번 파트너십으로 카카오는 국내에서 가장 앞선 AI 기술 환경을 확보하게 됐다"면서 "한국 시장을 깊이 이해하는 카카오와 글로벌 서비스 경험이 풍부한 오픈AI의 시너지를 통해 혁신적인 AI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오랜 기간 축적한 플랫폼 서비스 역량을 바탕으로 이용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개인화된 AI를 구현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dconnect@newspim.com 2025-02-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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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9.54%' 청년도약계좌 유리한 은행은? [서울=뉴스핌] 송주원 기자 = 청년세대의 중장기 자산형성 지원책인 청년도약계좌 2월 가입이 열렸다. 은행별로 급여통장, 카드 실적 등 조건에 따라 우대금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가입 희망자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조건을 따질 필요가 있다. 3일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청년도약계좌 2월 가입신청기간은 이날부터 14일까지다. 서민금융진흥원 CI. [사진=서민금융진흥원] 청년도약계좌는 매월 취급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신청해 가입요건 확인 절차를 거쳐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이번 가입대상으로 안내받은 1인가구는 2월20일~3월14일에, 2인 이상 가구는 3월4일~14일에 계좌를 개설(영업일만 가능)할 수 있다. 취급은행은 NH농협·신한·우리·하나·IBK기업·KB국민·부산·광주·전북·경남·iM뱅크(구 대구은행) 등이다. 은행별로 기본 금리와 우대 금리 및 우대 조건이 차이가 있어 자신에게 유리한 은행이 어딘지 살펴보고 가입하는 것이 좋다.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의 예금상품금리비교 탭에서 기본 금리와 우대 금리 및 우대 조건을 비교할 수 있다. 청년도약계좌는 5년 동안 일정 금액을 내면 만기에 본인 저축액, 은행 이자와 더불어 정부 기여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청년의 목돈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출시됐다. 납입 금액은 월 1000원부터 70만원 범위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월 70만원씩 5년간 적립하면 만기에 약 5000만원을 모을 수 있다. 지난 1월에는 누적 162만 명이 계좌를 개설했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비과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연 소득 2400만원 이하면 최고 연 6% 금리를 제공한다. 이보다 소득이 높으면 최고 연 5.5%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총 급여 6000만원 이하면 정부가 기여금을 붙여주는 구조다. 청년도약계좌 가입자 모두에게 이자소득세 및 농어촌특별세 비과세가 적용된다. 정부 지원금과 비과세 혜택까지 고려하면 실질금리 수준은 더 높다. 이에 더해 올해부터 만기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더 늘어난다. 금융위원회는 월 최대 기여금을 기존 24000원에서 33000원으로 늘렸다. 총 급여 2400만원 이하 가입자가 월 70만원씩 5년간 가입하면 4200만원을 납입해 만기 때 최대 5061만원까지 불릴 수 있다. 연 9.54% 일반 적금에 가입한 것과 같은 수준이다. 총 급여 3600만원 이하는 만기 때 최대 4981만원, 총 급여 4800만원 이하는 최대 4956만원을 받는다. jane94@newspim.com 2025-02-0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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