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전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인터뷰
"개딸, 나와 의견이 다르면 공격...전체주의에 가까운 참여"
당원 중심 대중정당. 더불어민주당이 당원들의 참여도를 높여 당내 민주주의를 확대하겠다는데, 당 지도부를 뽑는 최고위원 선거에선 '이재명'을 부르짖는 '친명마케팅' 일색이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이 전 대표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에 출석 도장 찍기에 바쁘다. 이게 민주 정당의 모습인가. 전당대회에서 지지자들 간 몸싸움이 벌어진 국민의힘도 이 물음에 자유롭지 못하다. 강성 지지층들은 왜 정치의 해악처럼 여겨지는가. 가장 모범적인 팬덤이라고 평가받는 노사모의 사례를 통해 팬덤과 정치가 현명하게 공존할 방법을 고민해 본다.
[서울=뉴스핌] 지혜진 홍석희 기자= "당원 수는 줄고 정당 수는 느는 것이 오늘날 정당 정치의 지배적인 경향인데 한국의 사례는 정반대의 경향을 보여준다. 정당은 줄고 당원 수는 폭증했다." (국가미래연구원, '만들어진 당원:우리는 어떻게 1천만 당원을 가진 나라가 되었나')
꾸준히 당비를 납부하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은 약 120만명. 한 명이라도 당비를 낸 당원은 250만명 정도. 전체 당원은 500만명에 이른다. 국민의힘의 경우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은 약 80만명, 일반 당원을 포함한 전체 당원은 430만명가량이다. 한국의 당원 수는 지난 20년간 폭증했다.
뉴스핌은 지난 3일 박상훈 전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과 만나 한국 정치의 팬덤 현상의 원인과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 전 위원은 한국 정치, 특히 민주당에서 팬덤 현상이 두드러지는 이유로 ▲사인화된 정치 ▲촛불집회의 영향 ▲청와대 국민청원 ▲시민단체·지식사회의 정치화 등을 꼽았다.
① 정당 밖의 리더...'사인화된 정치'
박 전 위원은 지난 20년 동안 민주당이 정당 내 문제를 '정당 밖'에서 해결하려 했다고 지적한다. '국민참여경선'이 대표적이다. 정당의 흥행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정당 안에서 오랫동안 신망받은 정치가가 성장하는 데는 불리하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인사가 외부에서 유입돼 정당을 변화시킨다는 설명이다. 이재명 전 대표는 국회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대선에 출마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2년 5월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불과 서너 달 만에 대선 후보가 됐다. "아웃사이더들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정당이 된 것이다."
② 촛불집회의 영향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도 민주당 내 대규모 팬덤을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원래 촛불집회는 중도와 보수까지 아우르는 일종의 '사회 대연정'이었으나 민주당이 분위기를 타고 대선까지 치르려고 하면서 독점하려 했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집회에 참여했던 흐름 가운데 9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지금의 40·50세대가 민주당과 민주당 후보들을 통해 본인들의 욕망을 강하게 투영했다고 진단했다.
③ 청와대 국민청원
'국민들은 직접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서도 박 전 위원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국민청원이나 직접 소통을 위한 '청와대 라이브' 등은 "대통령 권력이 유사 언론이 되려고 했던 것"이라며 "민주당이 대중적 열정이나 정념을 받아들이면서 팬덤 정치나 포퓰리즘을 주도하게 됐다"고 짚었다.
④ 시민단체·지식사회의 정치화
한국의 시민운동이 파당적이라고 지적했다. 정치나 자본주의로부터 독립된 공간을 만들기보다 양당 독과점주의의 파생물 비슷하게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박근혜 퇴진 집회를 하던 시민단체들이 그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민주당 캠프에 참여한다든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회혁신실에 참가하는 등 자연스럽게 공적 권력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지금 팬덤 정치 현상의 상당 부분은 시민사회의 공적인 에너지가 정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생긴 면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식 사회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지방대가 어려워지면서 대선 캠프에 교수들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언론인들도 마찬가지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박상훈 전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7.03 pangbin@newspim.com |
◆ "개딸, 전체주의에 가까운 참여...이재명, 팬덤 정치 악용한 대표적 인물"
무작정 수가 많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특정 정치인을 좋아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싫어하는 걸 남들도 싫어하게 만들고 싶은 것'은 문제가 된다. 박 전 위원은 "노사모로 인해 다원주의가 파괴되지는 않았다"며 "오히려 신선한 의견처럼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엄밀히 말하면 개딸 팬덤은 전체주의 유형에 가까운 참여다. '수박 깨기' 등의 행위가 당내 다원주의를 해친다고 지적해도 당은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한계다. 시민이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를 악용한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 정치 팬덤의 최대 수혜자는 이재명 전 대표일 것이다. 지난 대선 패배 직후 등장한 개딸들은 비명(비이재명)계에 대한 공격을 주도하며 당원 여론을 선도하고 있다. 박 전 위원은 더 나아가 이 전 대표를 '팬덤 정치를 악용한 대표적 인물'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 전 대표는 시민 참여나 당원 주권 등을 통해 성장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받는 혜택을 줄이거나 절제할 의사가 별로 없었던 것"이라며 "팬덤을 방치한 결과 지금 민주당에선 뭔가를 희생해야만 이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지적했다.
"당원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직접 목소리를 내는 민주당은 과연 민주주의에 발전적 효과가 있는 정당이 된 것일까. 아니면 하나의 목소리 이외에는 억압하는 전체주의에 기여하는 효과를 내는 것일까.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신규 당원들을 동원해 당을 특정인을 위한 도구로 만드는 데 성공한 정당이라고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세계 유례없는 한국의 당원 폭증은 정당 발전보다는 정당 퇴행, 정당정치의 몰락과 병행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책임 있는 참여의 결과도 아니다." (박상훈, '혐오하는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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